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8-10 20:1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부끄럼 없는 행동을 하려면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予所否者 天厭之天厭之
자견남자  자로불열 부자시지왈여소부자 천염지천염지

『논어』 「옹야편」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남자를 만났다. 자로가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공자가 맹세하여 말하였다. “내게 (예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하늘이 나를 버리시리라.”」

‘시(矢)’는 ‘서(誓)’로서 맹세하는 것을 말하고, ‘소(소)’는 ‘맹세하는 말(誓辭, 서사)’이다. ‘부(否)’는 ‘예에 맞지 않음(不合於禮, 부합어례)’으로 도를 따르지 않음을 말한다. ‘염(厭)’은 ‘기절(棄絶, 기절)’이니 버리고(棄), 끊는 것(絶)이다.

남자(南子)는 위나라 영공의 부인으로 음행을 한 여인이었다. 공자가 위나라로 가게 되자 그녀가 그를 만나려 한 것이다. 공자는 사양을 하다가 어쩔 수 없어서 만난 것이었다. 옛날에는 그 나라에서 벼슬을 하면 그 임금의 부인(小君, 소군)을 뵙는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제자인 자로는 자신의 선생이 음란한 여인을 만나는 것이 수치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가 기뻐하지 않은 것이었다.
공자가 자신의 제자이면서 호위무사이기도 한 자로가 기뻐하지 않았어도 위령공의 부인 남자를 만났던 이유는 그만큼 예를 따랐던 것이고 하늘을 향해서도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는 공자가 자신의 덕에 비추어볼 때 음행이 있는 여인이라도 그 덕에 손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확신했으며 스스로는 예를 따를 뿐이라는 자신감이었다. 이를 통하여 공자는 자로에게 지나치게 문자적 예만을 따져서 더 큰 도리를 놓칠 것을 염려해서 그를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소위 성인이라는 사람에게는 그의 경지(도)가 너무도 넓고 완전해서 굳이 ‘이러저러한 일을 할 만하다’라거나 또는 ‘그것들을 할 수 없다’라거나 할 일이 없다. 성인의 이런 상황을 ‘무가불가(無可不可)’, 즉 ‘가한 것도 불가한 것도 없다’라고 한다. 반면에 속이 좁은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자신에게 손해인지 이익인지를 따지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 아닌지, 또는 할지 말지 등의 계산을 해대기 일쑤다. 이에 비해 공자는 자신의 한 일에 대해 하늘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자기 행동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도를 사모하며 하늘나라의 삶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는 어떤 기준에서 선택되고 실천되어야 하는가. 그 기준은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그 순간까지 말씀을 통해서 익혀온 자신의 신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갑자기 평소 신앙을 따라 행동하던 데서 벗어나서 거룩한 성경 구절의 한 부분을 선택하여 그대로 실천하려 할 때는 그 행위는 오래지 않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지금 보고 있는 성경, 지금 부르고 있는 찬송, 지금 처해 있는 상황 가운데서 평소에 하던 자신의 생활습관에 맞게 조절하여 행위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후에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지를 곱새겨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늘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바라보고자 해야 한다. 현재의 자기 모습을 성경에 비추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그 위치에서 어떻게 더 나은 생활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추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자신의 훈련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에게 수용하는 것도 의의가 있다. 그 후에 이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그런 사람은 신앙인으로서의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일방적으로 지극히 높은 신앙을 지닌 사람의 행위만을 본받으려 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들의 큰 믿음의 행위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을 배우자. 동시에 나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사람들의 행위들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을 배우자. 믿음은 한 번에 거대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차근차근 믿음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소소한 일에서든 중대한 일에서든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헤아려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말씀에 부끄럼 없는 행동양식, 자신의 믿음을 훼손하지 않는 행동양식,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행동양식을 세워가며 실천하는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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