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2-11-09 20:2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통치섭리에서의 시간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엄밀히 보면, 성경 전체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섭리다. 여기서는 통치언약을 성취하는 곳으로, 룻기부터 에스더서까지를 그 중심으로 삼는다. 통치언약을 성취하는 그 시간적인 논리나 체계는 너무도 신비롭다. 자손언약과 땅언약을 성취하고, 그다음에 바로 이어서 통치언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전체는 창조부터 심판까지다. 태초(太初)로서 시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지금 21세기는 노아시대를 제대로 들추어 본다면, 잘 이해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광야시대는 본질적으로 21세기와 동일하다. 본질을 짚지 못하면 늘 지엽에 휩싸여 헤맬 수밖에 없다. 헤맨다는 것은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갈피는 시대감각과 아주 밀접하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면, 현실직시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치언약 성취섭리의 부분은 바로 룻기부터 에스더서까지다. 이 시기도 노아시대를 섭리하신 그 연장선상에서 본질적으로나 원리적으로 대동소이하게 진행되어 왔다. 통치섭리에서 시간섭리는 아주 중요하다. 룻기부터 에스더서까지에서 다윗왕국(조)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언약 성취섭리를 정리해 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 룻기는 다윗왕국 준비시대이다. 사무엘서는 다윗왕국 건설시대이다. 열왕기는 다윗왕국 분열시대이다. 역대기는 다윗왕조 계승시대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와 에스더서는 다윗왕조 회복시대이다. 이 부분에서, 섭리에서 중요한 시간을 중심으로 간단히 분석한다.


1) 시작부터의 섭리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로 룻기는 시작되고 있다. 이 사사시대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배제하고 세월 따라 저절로 올 수 있나? 지금도 성경을 보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여 시대의 주인공으로서의 인간을 강조하기도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시간 자체가 절대적인 주권을 지니고 스스로 지나가는 것일까? 이것은 시간의 정체성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시간의 정체성에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시간의 존재여부이다. 시간은 정말 있는 것일까? 과거는 지나가버린 것이고, 현재는 지나가는 중인 찰나이고, 미래는 지나오지 않은 것이니? 태초로부터 지금 21세기까지 섭리 안에서의 시간을 보지 않고, 시간의 본질을 짚을 수 있을까? 모압 땅에서의 10년쯤은 몇 문장 지나서 바로 묘사되고 있다. 태초(太初) 섭리를 성경 전체에서 확증하지 못하고서, 이 10여 년의 세월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한 시대의 시작은 앞 시대에 이어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단절이 개입될 수 있는가? 룻기에서의 상황 묘사에서 “마침”은 참으로 신비롭지 않은가? 사무엘서의 시간 묘사도 섭리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매년(每年)마다 인간 자신이 걸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가? 인간의 시작은 잉태(孕胎)로 묘사된다. 사무엘의 잉태는 한나의 기도와 찬송을 통하여 섭리로 잘 귀결되고 있다. 사울이 죽어 사무엘을 만나는 장면도 사무엘상에 나오고 있다.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은 후에”로 시작되고 있다. 잉태나 새로운 시대의 시작 등이 섭리 없이 우연히 저절로 펼쳐지고 있는가? 이 문제는 성경관이나 성경해석 관점 등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한 성경을 봐도 그 해석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분리되거나 분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는 노인 된 다윗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역대기하의 마지막과 에스라의 시작은 동일하다. 이 동일한 부분을 해석하는 문제도 참으로 중요하다. 에스더서는 일기(日記)의 기록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2) 결말까지의 섭리

사울의 결말은 처참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 아들 요나단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시간은 다윗의 절친(切親)인 요나단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왔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것이 공약(空約)일까? 열왕기하는 여호야긴의 노년(老年)으로 끝나고 있다. 에스라서에는 사로잡혔던 이스라엘 자손들의 회복이 강조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힘은 과거에 기초를 둔 현재의 힘이다. 이런 시간을 장악하는 힘이 인간들에게 있나? 태초를 지으신 창조주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고 있다. 시간 섭리를 하시는 그분의 말씀은 모든 인간들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고 계신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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