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6-01-10 20:5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독교 신앙의 원형


3. 신학적 치유의 방향

2) 성경적 신학정립에 의한 신앙의 정체성 확인

(2) 신앙의 정체성 확립  -신앙의 원형 찾기-

건전한 신학은 건실한 신앙의 필수전제조건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이해는 우리의 신앙의 올바른 성장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는 신앙은 맹목적이다. 우리는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바른 신학의 토대 위에서 정당한 기독교 신앙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언약성취사적 성경신학의 입장에서 신앙의 본질과 원형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기독교 신앙의 독자성

단마디로 말해 성경은 기독교 신앙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한다.(엡 2:8) 이는 참으로 모든 이방종교에서 말하는 신앙과 천양지차의 내용을 가진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이방종교에서의 신앙에는“신의 선물”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부터 말미암는 “자기노력과 정진의 의미를 포함하는 信心”이다. 이는 철두철미 인간의 내적인 노력을 전제하며 그 신심 안에서 인간적 희구와 바라는 소망,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과는 무관한 죄 된 욕망을 담고 있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절대적인 작정을 믿지 않는 모든 이방종교 혹은 무속종교가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신앙의 의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와는 그 원리와 내용이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려면 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 하나님의 사역을 먼저 말해야 한다. 모든 만물과 만사 모든 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앙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릇된 출발을 하게 된다. 즉 인간 편의 노력과 정진이 신앙의 내용에 끼어들어 가게 된다. 이점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는 이방종교의 신앙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만사와 만물이 그러하듯이 기독교적인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으며 그로부터 주어진다.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에 의한 신앙

이를 올바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영웅적인 믿음의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즉 아브라함은 우리 성도들이 따라야 할 믿음의 모델로 부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아브라함에 대한 이해는 올바른 기독교 신앙에의 길을 가로막는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성숙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며, 또한 아브라함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믿음을 만들어 낸 것도 결코 아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게 된 신앙은 그 이전 하나님이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언약대로 성취해 가신 신실하신 사역의 결과임을 알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던 불신앙의 사람 즉 죄인이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신 것이었다. 즉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창 12:2)”는 언약을 하신 것이다. 그 후에 여러 차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번창하게 해 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허리에서 열왕이 나와 그 나라를 통치하게 해 주겠다”는 이른바 삼대 언약을 해 주셨다.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자신을 보여주시는 방법이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신앙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그런 언약을 이루는 과정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이다. 아브라함 생애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이삭을 낳게 되는 일이다. 그 이삭을 통해 장차 큰 민족이 이루어지고 결국은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 즉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이 성취되기 전까지는 아브라함이 신앙의 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부단히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도 불신앙적인 삶을 살아가는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셔서 그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이루어주신다. 그것이 창세기 21장에 나타나는 이삭의 탄생인 것이다. 왜 하나님은 이런 복잡하게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신실성을 보여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만드시려는 의도이다.
하나님은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그래서 도저히 낳을 수 없는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잉태되고 출생하게 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삭의 출생을 가능하게 하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그 과정에서 불신앙의 삶을 살아갔지만, 하나님은 일향 미쁘셔서 마침내 언약을 이루어 이삭을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통해 이삭을 출생하게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확신을 가져다준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았다. 그때의 믿음도 하나님이 언약의 말씀을 믿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으며 그 후 확실하게 이삭의 출생을 통해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이 점에서 아브라함이 갖게 된 신앙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약하신 것을 그대로 성취하심으로 주신 선물인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은 구약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심축이 된다. 이른바 아브라함에게 주신 삼대언약, 즉 자손 언약, 땅 언약, 통치 언약은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의 표현으로서의 언약이다. 즉 자손 언약은 국민을 말하고, 땅 언약은 국토를 의미하며, 통치 언약은 국권을 뜻한다. 이런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가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한다. 그것은 다윗 왕에 와서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며 후대에 그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한 번 망한 다음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하심으로 최종적으로 성취된다. 이렇게 아브라함 언약은 구약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기본 틀로서 작동하며 구약 성도의 기본 신앙을 형성하는 근거가 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규욱 목사 (장안중앙교회)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여호와의 영원성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