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교회 재정의 개혁 방향과 대안’을 찾아서
한국 교회 개혁을 말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교회 재정의 투명성이다. 교회 재정은 성경 진리를 깨달은 교인들이 자신들이 깨달은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로 깨닫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함께 모아 사용하는 공적 자산이다.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모든 재산이 그러한 목적으로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 재정은 너무나 선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연보(捐補)를 내는 것으로 자기 역할과 소임은 끝났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러한 은혜를 아직 모르는 자들에게 성경 진리를 깨닫게 하는 복음 전파 사역은 성도들의 구체적인 참여보다는 소수 지도자 그룹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듯 성도들이 함께 모은 교회 재정은 소수 그룹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도 예산과 지출이 투명하게 성도들에게 보고된다면 그래도 괜찮은 형편이다. 성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행태의 연보 문화는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대부분 한국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바치면 그만이라는 무속적 심리가 지배하는 경우가 아직도 팽배해 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재정 개혁은 우선 성도들의 신앙 수준의 향상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신앙 수준 향상은 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고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하는 연보의 원리와 동기 및 목적과 방향이 선명해진다.
1. 교회 재정은 예수 그리스도가 확증하신 연보(捐補)의 원리가 지배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의 모든 자산(資産)은 바로 ‘연보’라는 큰 범주로 묶을 수 있다. 과부의 엽전 한 닢부터 재산 전부를 팔아 복음 사역에 드리는 자들의 기부, 나아가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치는 데 이르기까지 모든 수고와 희생과 봉사가 바로 연보라는 소중한 신앙적 가치와 연관된다. 물론 이 연보의 원천은 이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역에 그 기원을 둬야만 한다. 교회의 거룩한 연보에 대해 바울 사도가 기록하기를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교회를-필자 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고후 8:9)에 있다고 밝혀 준다. 부요하신 자의 가난하게 되는 사건인 기독교의 연보는 이 세상의 단순한 기부 행위와는 그 질을 달리한다. 세상 어떤 피조물이 숭고한 자기희생을 했다고 해서 모든 인류를 부요하게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이 연보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만이 수행할 수 있는 사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행위로 보충할 필요가 없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연보 원리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연보 행위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외형적으로 희생하고 봉사하면 얼마든지 수행 가능한 그런 도덕적 행위로 환원하거나 축소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연보는 인간 능력으로 따라 할 수도 없고 또한 보충하기 위해 따라야 할 필요성도 없어졌다는 말은 신앙인의 모든 행위를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연보의 은총이 뒤덮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연보의 신적 은총이 지배하는 성도들의 연보는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한 조건이 결코 될 수 없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의 헌금 방식을 보면 그리스도의 연보에 나타난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거나 퇴색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교지도자들은 몰라서 그러는가 하면 또한 알고도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 그리스도의 연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전달한다. 성도의 전체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은 바로 하늘에 속한 축복권을 가진 부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완벽하게 가난하게 된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연보의 총화(總和)인 교회 재정의 기부와 사용의 주체는 모든 성도다.
교회 재정의 본질인 연보의 총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총의 총화와 동일하다. 인간이 기부하는 연보 액수와 규모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말은 연보의 기부 주체와 사용 주체, 나아가 평가 주체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가령 바울 사도가 연보를 미리 준비하도록 권면하여 억지로 내는 연보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고후 9:5)고 했을 때, 이는 사도 바울의 수고 때문에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연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연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완전한 것인지 깊이깊이 기억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연보가 억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참 연보의 행위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으며 동시에 성도가 하는 연보라도 인간 상호 간의 주고받는 물질적 기부 행위 차원이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성도가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하면서도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연보 행위가 되도록 하기’(고후 9:7 참조) 위함이다.
성도에게 연보 사역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을 확정하여 계시하시기 때문이며(고후 9:8) 또한 성도들이 행하는 연보는 하나님 앞에서만 순수하고 거룩한 것임을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이에 복종하는 것 그리고 성도를 섬기는 거룩한 연보 생활은 하나님이 주신 지극한 은혜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것과 직결된다.(고후 9:13-14 참조) 이렇게 볼 때 연보는 교회 계좌로 입금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는 세상의 기부 행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회 재정과 재산의 권한이 특정한 그룹 특히 당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성경적 원리를 훼손할 확률이 매우 높다. 현재 상황은 소수의 당회원과 교회가 설립한 재단들의 소수 인원에 의해 전횡과 타락과 부패가 재정 운영에서 일어나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령하고 고귀한 연보의 신앙적 원리에 무지한 성도들이 많을수록 이러한 부패는 더 가속화될 것이다.
3. 신앙적 연보의 주체인 성도의 진리 인식이 교회 재정 개혁의 토대가 된다.
교회의 모든 재산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거룩한 연보의 가장 구체적 증거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의해 교회의 막대한 공동 자산이 불법과 부패로 전락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진리 전파의 매우 긴요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즉 연보 관리의 근원적 주관자가 바로 하나님이며 그의 주권적 능력이 연보 운영을 섭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연보의 총괄적 책임자는 하나님이시며 이를 확증한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겸손과 비움으로 완성한 연보 사역이다. 이러한 진리 인식에 대한 성도들의 인식이 든든한 토대가 되지 않는다면 신앙적 연보 생활은 점점 세속적인 기부 행위 정도로 끝날 것이다. 아니 더 심하게 부패하는 불법의 온상이 될 것이다. ‘일만 악의 뿌리가 돈 사랑’(딤전 6:10)임을 깊이 고려할 때 연보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믿는 성도들의 즐거운 연보와 그리고 연보 운영의 동참과 합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연보를 교회에 낸다는 생각보다 우선 ‘왜 나에게 이것을 이만큼 주셨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깊이 고민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생각만 한다고 답이 나올 수는 없다. 이러한 거룩한 연보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전적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확인하는 것이 바탕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분명 오늘도 살아계셔서 성도 자신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또한 지상에서 연보라는 은총의 사역을 왜 하게 하시는지 고민하는 것이 연보 행위 이전에 반드시 선행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에게는 각각 은사 따라 선한 사업을 하도록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청지기로 소명하셨다면 소명 받은 자에게 사명도 주시며 그것에 맞는 물질도 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앞에 기쁘게 쓰도록 지혜와 명철도 주신다. 이러한 연보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는 매우 적다. 단지 내는 것에만 급급하다. 아니면 당회가 세워놓은 예산을 채우기 위해 성도들이 왜 연보를 해야 하고 어디에 연보를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의 여지조차 없애는 경향이 매우 짙다. 이런 점에서 현행 연보 사용의 모든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성도들을 재정 운영에서 배제하는 교회 정관(定款)이나 당회 규칙이 있다면 반드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재정 관련 정관이나 규칙을 개혁한다고 하여 재정 개혁이 당장 이루어지고 재정 운영의 건전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결국 과제로 남는 것은 교회 재정 개혁 또한 성경 진리에 대한 성도들의 수준 향상과 질적 도야가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배윤리 권사 (교회동역자협회 / 객원기자) |
미국에서 본 한국 교회의 내용과 방법을 중심으로 |
국제사이버신대원 개원과 교회 개혁의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