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8-12-26 21: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


이름은 그 존재의 성질과 목적 등 총체적인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이 때문에 최근 개명을 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십계명에서 제 삼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이다. 십계명의 제 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스라엘을 애굽(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통틀어 고유명사로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바로 “여호와”이다. 이것의 의미는 실로 크다.
하나님의 이름으로서의 여호와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가장 강하게 결합시킨다. 언약인 구약성경과 성취인 신약성경을 합치면 바로 여호와의 의미이다.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핵심은 메시아이다. 이 메시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스스로 자기에게 하는 맹세이다. 이런 맥락과 차원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로 통하여 영원히 자존(自存)하시는 참 신(God)이다.
이렇기 때문에 신약성경이 시작되면서 제일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성경의 핵심인 “여호와”를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연결해가는 목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마태복음의 시작 부분 곧 1장 1절을 필두(筆頭)로 하여 4장까지는 마태복음의 서론이며 동시에 신약성경 전체의 서론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태복음 1장에서 4장까지의 의미는 구약의 언약에 대한 성취이기 때문이다(박용기, 성경강론, 제13권 참조). 이제 여호와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분석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마태복음 1장에 두 가지로 나오고 있다. 먼저는 “예수”이고, 그다음은 “임마누엘”이다. 주의 사자는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임마누엘로 예언했다. 두 가지로 표현된 이름은 결국 하나의 의미로 맥을 같이 하여 통한다.

1) 예수

이 “예수”는 신약성경이 시작되면서 바로 등장하여 요한복음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4복음서 전체의 주제가 “예수에 의한 성취”(박용기, 성경강론, 제13권)인 것과 아주 밀접하다. 지금은 빅(Big)데이터가 모든 분야에 점점 큰 영향력을 미쳐가고 있다. 많이 나오고 자주 쓰이는 용어들은 그 전체의 주제와 핵심에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의미다. 많은 나라의 대통령들이 대화나 연설에서 무슨 말이나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는가를 분석하고 짚어보는 것은 빅(大)데이터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 천당”이나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와 같이 기독교 소개나 전도에서 예수는 누락됨이 없다. “등잔 밑이 어둡다(燈下不明)”는 속담처럼 우리 주변에 늘 들리는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속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가관(可觀)일 것이다. 성도라 자처하고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매일 “주여”라고 소리쳐도 성경대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깊이 알아 믿고 있는가? 이 질문을 가지고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가지고 살펴보고 조사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요즈음의 시기는 2018년도의 성탄절이 중심을 잡고 있다. ‘Merry Christmas’는 세계의 곳곳에 넘치고 있다. 겉으로 넘치는 세태의 환상 앞에, 그 속의 진정한 알맹이를 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은 과연 얼마인가? 신약성경의 끝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참으로 빛나고 있다.

2) 임마누엘

이 “임마누엘(Immanuel)”은 구약성경의 이사야서 7장과 8장에 각각 한 번씩 나오고 신약성경에 와서 마태복음 1장에서 사용된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다. 여기의 “우리”에서 그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도 당연히 예수 자기 스스로가 그 중심이다. 이 임마누엘은 그 표현 자체는 단지 세 번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창세기부터 넘쳐나고 있다. 창세기 6장에서 여호와께서 그분의 영(靈)은 육체가 되어버린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바로 성령으로 잉태하여 나실 하나님의 아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시고 살리셨다. 바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친히 약속해 주셨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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