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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작성일 : 25-09-02 09:5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과거로 현재를 억압하는 역사주의를 경계하라!


니체는 바젤대학 고전 문헌학 교수로서 『반시대적 고찰(Unzeitgemässe Betrachtungen)을 발간한다. 당시 독일은 역사주의(Historismus)의 전성기였습니다. 역사주의는 역사를 절대화함으로써 모든 인간 현상과 문화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이해하려는 경직된 태도를 지닌다. 그리고 과거 지향성에 고착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과거 사실의 누적·연속성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성을 마치 신화처럼 신봉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가치중립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며 소위 ‘있는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기술할 수 있다는 과도한 확신에 사로잡힌다. 그러면서 진리·가치·제도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는 상대주의를 강조하며, 방대한 자료 수집·비교·연구에 집중하면서 학문적 전문화를 꾀한다. 이렇게 과거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연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려는 상대주의적인 역사주의는 지식은 분명 늘어나지만 그러할수록 삶과 단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니체의 지적이다. 랑케(Ranke) 사학, 헤겔식 역사철학, 괴팅겐 학파 등은 역사적 사실의 축적과 과거에 대한 숭배가 삶과 그 문화를 지배함으로써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본래 삶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하는데, 당시 학문은 오히려 삶을 억압하는 폭군으로 변질했다고 보는 니체는 역사를 현재 삶의 중심에서 비판적으로 새롭게 규정하고자 했다. ‘삶을 위한 역사이어야지 역사를 위해 삶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니체의 철칙(鐵則, ehernes Gesetz)이었다. 특히 니체는 인간을 행동 불능, 창조성 상실, 삶의 무력감에 빠뜨리는 지나친 역사 지식을 철저히 경계한다. ‘박식한’ 현대인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자기 삶에 유용한 가치를 창조하거나 미래를 열어갈 힘은 상실한 시대가 니체를 역사에 집중하게 했다. 니체에게 역사는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문화·교육·삶의 질서 전체를 좌우하는 생생한 삶 자체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래서 먼저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단절하는 계보학적 탐구 방식으로 역사가 삶을 억압하는 내력을 폭로하고 당대 문화를 비판했다. 삶에 봉사자가 될 수 없는 역사를 철저히 배격하는 니체에게 역사와 생존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동일한 범주다. 그래서 니체가 철저히 경계하는 인간 유형은 과거의 것을 즐기면서 동시에 그 과거가 파멸당할 것을 우려하며 몸서리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세기말의 유형들은 미래 창조의 동력은 점점 상실하면서 항상 “앞으로 올 어떤 삶도 그들의 삶을 정당화할 수 없”(358)다고 보는 자들이다. 니체는 당대 이러한 철학이 바로 헤겔 철학이라고 비판한다. 역사의 자기 완결성을 확신했던 헤겔 철학은 절대정신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드러낸다는 진보 낙관론을 펼친다. ‘철학은 자기 시대의 사유다’라는 방식으로 철학과 역사학을 일치시키는 헤겔은 역사와 인간 정신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바른 ‘교양(Bildung)’이라고 보았다. 이에 당대 독일은 헤겔 철학을 교양의 정점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주의적 자만심은 역사와 현재를 ‘완결된 진리의 실현’으로 간주함으로써 미래의 창조 가능성을 폐쇄해 버린다. 이러한 교만한 교양은 과거를 진정으로 비판하고 현재를 창조적으로 열어갈 교양이 아니라 현재의 권위로 모든 것을 봉합하는 타락한 자기만족적 역사주의다. 이러한 역사관은 예술이나 종교 분야를 역사주의의 도구로 삼고자 하며, 과거 극복과 해체를 통한 창조적 발상은 억압한다.

니체는 ‘역사학=철학’으로 보는 헤겔 철학은 역사를 ‘자기실현의 개념’, ‘민족정신의 변증법’ 그리고 ‘최후의 심판’으로 규정했다.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개념’으로 보는 역사관에서 철학적 ‘개념(Begriff)’은 역사적 ‘정신(Geist)’이다. 개념을 통한 역사 인식은 곧 정신의 자기 이해이며 자기실현의 운동이다. 개념 곧 정신의 자기실현으로서 역사는 또한 ‘민족정신의 변증법(die Dialektik der Völkergeister)’이다. 세계사가 곧 민족정신(Völkergeist)의 무대가 됨으로써 민족정신의 상호 갈등과 충돌은 더 높은 단계의 자유와 이성을 실현하기 위한 극복과정이 된다. 그리고 헤겔 철학에서 세계사는 또한 ‘세계 심판(Weltgericht)’(359쪽 참조)이다. 왜냐하면 각 민족과 국가는 역사 무대에서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변증법적으로) 결국 소멸(심판)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세계사는 바로 이성의 자기 목적인 ‘자유’의 실현을 향한 정의로운 심판의 과정이다. 이러한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해 니체는 먼저 역사와 현재를 절대화하여 현재가 곧 최고의 진리인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역사철학은 모든 것을 합리적 이성이 주관하는 역사적 필연성 속으로 환원해 버리면서 미래 창조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태도는 창조에 유익한 비판과 교양을 억압하고 파멸하는 역사주의적 교만을 낳기 때문이다.

니체는 역사주의에 대한 확신과 숭배를 또한 “역사적 권력의 종교”(360)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종파들은 “폭력 속에 들어 있는 폭력 그 자체를 숭배함으로써 천국과 지상의 모든 폭력을 포기하는 것”(360)이라고 비판한다. ‘폭력 그 자체에 대한 숭배’란 특정 권력의 옳고 그름이나 정의(正義, Gerechtigkeit) 여부를 분별하지 않고 힘 있는 권력이기 때문에 무조건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헤겔식 역사주의 숭배자들은 그 폭력을 즐기는 듯 역사적으로 분노와 열정의 과정도 마치 관대하게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현대의 다양한 삶의 동력들을 묵살해 버린다. 역사를 이념(이성)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 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헤겔의 역사주의는 자기 시대를 인간 자유가 역사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매우 위험한 역사관이다. 이들은 종교 대신 ‘역사’를 새로운 신으로 숭배하는 신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역사적 필연성’이나 ‘진보의 이념’을 숭배하고 이를 절대화하며 무비판적으로 복종한다.

니체가 볼 때 당대의 역사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역사를 신성화하고 이것을 통치 권력으로 숭배하고 그러한 권력에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착각하는 자들이었다. 역사·권력·진보·이념 숭배가 시대의 절대 종교로 둔갑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독일 사회에서 주도적 가치 체계로 자리 잡았으며, 이러한 역사주의에 얼마나 순종하느냐가 ‘객관적 진리’를 따르는 ‘이타적 도덕’을 실천하는 자가 되는 전체주의의 나락으로 향하고 있었다.

<279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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