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09-11-03 11: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유지니아> 섬뜩한 아름다움에 매료당한 가을 밤


3년 전 가을 이맘때쯤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대학생이었고 주말 밤을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오붓하게 보내던 터였다. 오랜만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대청소를 하고, 밀린 빨래를 해치웠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요즘도 추리 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그 때가 떠오른다. 유일하게 켜져 있던 스탠드 불빛 아래서, 젖은 빨래의 향긋한 섬유 유연제의 냄새를 맡으며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그 때가. 복도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숨을 죽였고, 휴대폰의 진동만 짤막히 울려도 깜짝 놀랐었다. 무엇이 그렇게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는지, 책을 손에서 놓을 때까진 늘 긴장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문인가, 추리소설의 계절은 여름이라고들 하나 나는 이즈음에 읽는 추리소설에 큰 매력을 느낀다. ‘더위를 식혀준다’는 강점의 혜택은 누릴 수 없지만 깊어가는 가을밤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는 풍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소개하려는 소설도 거장 아가사 크리스티 못지않은 박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때는 20년 전, 호쿠리쿠 지방의 명가 아오사와 가에서 독살 사건이 발생한다. 그 날은 아오사와가 당주의 환갑과 어머니의 미수, 아들의 생일이 겹치는 큰 잔칫날이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 비옷을 입은 남자가 배달해온 축하주와 주스를 마신 후 치명적인 독에 의해 죽어간다. 일가족을 비롯해 친척과 이웃까지 총 17명이 살해된 이 처참한 현장에서의 유일한 생존자는 히사코라는 맹인 여자다. 어딘가 섬뜩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고, 명석하며 완벽에 가까운 미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그녀. 현장에는 ‘유지니아, 나의 유지니아.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줄곧 외로운 여행을 해왔다’라는 의문의 편지가 남겨져 있다. 몇 달 후 한 남자가 자신이 이 사건의 범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종결짓기에 이 사건은, 어딘가 크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유지니아>다. 아오사와가의 한 이웃소녀가 그 독살사건을 포맷으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그렇게 해서 쓴 소설 ‘잊혀진 축제’가 큰 히트를 치고, 그녀는 이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당시의 사건과 자신의 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그 이야기는 계속 된다. 그녀의 입을 통해, 그녀를 도와주던 후배 남학생의 입을 통해, 독을 마시고도 생존했던 가정부와 딸, 사건 당시 범인을 따랐던 아이, ‘잊혀진 축제’의 편집자,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담당 형사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집합시킨 것이 이 책 <유지니아>다.

 <유지니아>는 기존 추리소설의 문법을 깨뜨린 새로운 소설이었다. 범인, 범행의 동기, 범행의 과정은 잔 핏줄처럼 소설의 흐름을 이어가고 구성할 뿐, 큰 반전을 위한 숨겨둔 '한 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 살인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된 사람들의 개별 인터뷰 형식으로 엮어졌는데, 그들의 시각과 기억에 따라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기도 은폐되기도 하며 느릿하게 결말로 나아간다. (하여 사건의 기승전결에 초점을 두고 읽는 독자들에게는 자칫 고문이 될 수도 있다.) 한 인물의 증언을 신뢰하고 나면, 다음 인물의 증언에서 부딪히게 되고 그 다음 인물의 증언을 의지하면 또 다음 인물의 증언에서 여지없이 부서진다. 선입견을 갖거나, 안 하니만 못한 어설픈 추리는 금물이다.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는 게 오히려 편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고 정신이 없다. 그 ‘정신없음’이 산만함을 일컫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온다 리쿠는 뭐랄까,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문장의 세련미나 이야기를 꾸리는 힘이 상당히 완숙하다. 장르문학임에도 충분히 고급스럽고, '찌르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녀의 문장은 상당히 세련되었고 도도하면서 친절하다. 묘사력 또한 뛰어나서, 호수에 파문이 일듯 두려움을 확장시키고 선뜩한 공포에 제압당하게 한다. 히사코가 그네를 타는 그 부분에서의 전율이란! 지금 생각해도 등줄기가 오싹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공포감이었다.

 글을 쓴다고 해서 다 똑같은 작가는 아니다. 창의력의 중요함은 결코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색다른 추리소설, 새로운 추리소설 하면 텍스트 자체의 새로움만 생각했던 내게 그녀의 독특한 구상과 전개방식은 참으로 놀라운 한방이었다.

 그리고 그 ‘한방’이 내게도 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똑똑하게 공부해나가는 것이, 예술을 하든 학문을 하든 참 크고 탄탄한 기본이 되어 줄 것을 확신한다. 이것은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가지지 못한, 그러나 내게 있어서만큼은 엄청나게 독보적인 무기가 아닌가. 그에 나는 충만한 위로를 얻고 자부심을 가진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작게나마 재능을 주시고 또 그 재능을 돋보이게 할 지식과 정보를 주시니 먼 길을 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꿈꾸고 필요로 하는 것이 모두 이 말씀운동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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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쉽게 읽었으나 쉽게 털어낼 수 없는 글, 무진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