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1-12-17 22:0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자타공인, 말씀운동의 최초 + 최연소 선교사 1호가 떠나며 올리는 글


골치 아픈 얼굴로 인도에 가져갈 살림 리스트를 작성하던 어떤 날, ‘대표’라는 직함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것은 스스로가 챙길 때보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을 받을 때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제 입으로 말하기엔 몹시 객쩍은 감이 없지 않으나 저는 이제 명실공히 말씀운동의 ‘대표’가 되어 한국을 떠납니다. 

인도 행을 결심한 것은 불과 석 달 남짓. 처음 저를 떨리게 하던 막연한 감정의 덩어리는 조금씩 명징하게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가치로운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벅참, 성치 않은 몸으로 해나갈 현지생활에 대한 염려, 이십 후반의 한국여성이 밟는 뻔한 패턴의 인생 루트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혹은 불안, 사랑하는 사람들을 1년이나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진한 서운함, 낯선 것들에의 적응에 대한 피곤함과 번거로움,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말씀운동에 최적화 되어있던 소통방식으론 섞이기 힘들지도 모르기에 겪어 할 외로움까지. 그리고, 그 감정들의 중앙에 가장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던 사명과 자부심.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교회생활을 참 가열차게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목회자 자녀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열심과 성실로 임해도 목사 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식의 시선들이 싫은 순간도 많았습니다만, 목사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본 덕이 더 많기 때문에 괜찮았답니다. 

  그렇게 교회생활을 했던 제가 유일하게 시큰둥했던 일이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대학청년부를 조직하고, 교회행사 기획과 진행에 앞장서고, 성가대 활동도 하고 교회 내 연구부원으로 스터디도 꾸준히 해왔지만 ‘교사’의 일만큼은 그닥 재미있어 보이지가 않더라구요. 교사샘들이 의무감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제게 교사란 그 정도의 의미였거든요.

그러던 중에 무릎에 병이 났고, 가늘고 길게 이어오던 말씀공부의 끈에 확실한 불을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아프기 전에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함몰되기 일수였던 미약한 제 사상이 조금씩 단단하게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그렇게 반년 정도가 지난 후, 우연한 기회에 교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스쳐 듣게 되었지요. 내가 한 번 해볼까? 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가슴이 콩콩 뛰었습니다. 

  평소엔 말썽꾸러기라고 미워했던 녀석들이 어쩜 그렇게 예쁘던지요. 수업 첫 날, 불과 세 뼘도 안 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쑥스럽게 웃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꼭 사랑고백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들었습니다. 물을 머금은 듯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인생을 주재하고 세상을 지배하시는 이 ‘하나님’이란 분에 대해 정말 제대로, 올바르게, 확실하게, 분명하게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늘 경각심을 잊지 않았던 것 같아요. 

가르친다는 것은 물리적인 동시에 상호의 화학작용이 활발하게 이는 행위였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도 희열이 느껴지는데, 타인의 그러함을 지켜보자니 그에 몇 배는 더해 기뻐지더라구요. 다행히 아이들도 흥미로워하는 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를 공부시키고, 가르치는 일을 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더 큰 무대로 저를 옮기고자 하십니다. 도대체 날 얼마나 크게 쓰시려고 이러시나 원망하고 울었던 1년, 정말 뜻이 있으시긴 한 건가 반신반의 했던 고통의 시간 뒤에 이렇듯 한꺼번에 선물을 안겨주시다뇨. 물론 험난한 여정이긴 하겠지만 지난 시간 아프면서 받았던 것들의 값어치를 알기에 이제는 더 의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여정이 보상이라고, 잡스도 말했었죠.

지금 저는, 가슴에 태극기를 단 국가대표가 된 기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절대 저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응원과 지지가 있어야 선수로의 무장과 스타트가 가능하듯 저 역시도 성도님들의 한 마음 한 뜻이 있어야 그것을 등에 업고 그 속에서 달려나갈 테니깐요. ‘말씀운동’ 최초의 장기 파송 선교사 1호, 최연소 선교사 1호! 거창하다고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로 이러한 정신으로 무장하고 떠납니다. 그 타이틀에 걸맞는 내용물을 가질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을 설파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잘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어요.

유대 땅에서 시작된 한 조각 예리한 복음의 빛이 맹렬하게 공기를 가르며 유럽과 미국을 꿰뚫고 한국에 떨어졌습니다. 지금 종교의 나라 일본에는 작게나마 교회가 뿌리를 내렸고 중국에는 공산주의 철문이 열리고 있으며 중동의 독재정권이 허물어져 복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있는,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 진리의 말씀을 꽂아 넣기 위해 이제 갑니다. 이 엄청나고 위대한 일에 저를 써주시는 하나님과, 이 일에 동참해주시는 사랑하는 성도님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선교활동에 매진하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성경신학연구소 겨울특강을 마치고...
행복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