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1-10-30 20: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인간의 정신은 내버려두면 얼마든지 나태해지고, 그러다 아예 푹 잠드는 경우가 있다고 일본의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말했다. 아팠던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내가 그랬다. 처음엔 아랑곳 않고 독하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점차 한계가 느껴졌고 나 자신과의 타협을 수시로 성사시키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나태함과 게으름에 푹 젖어, 자극조차 받지 못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집에 갇혀 있다 보니 세상과 멀어지게 되고 내 앞에 무한대로 펼쳐진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고민은 시작되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 이름을 떨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공을 쌓을 수 있을까.

  그러던 중에 토크쇼에 나온 안철수 교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겐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에 접하게 된 박경철, 유홍준, 한비야, 이태석 신부의 삶 역시 마찬가지로 강렬한 쇼크로 다가왔다. 그들은, ‘나’를 넘어선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성공 그 이후’의 삶이 아니라 그냥 그들의 일상 자체가, 그들이 쓰는 시간 자체가 상생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사회에서 얼마만큼의 필요한 인물인지를 예측하거나 목표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원래 가지고 있던 성정 그대로에 깊이를 더해가며 자연스레 행동하고 실천해온 것이다.

  부끄러움 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상했다. 나는 진리를 아는 사람인데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애국은커녕 국가의 경계가 사라져야 된다고 생각했고, 희생과 봉사로 죽음의 근처까지 다다르는 사람들을 보며 저러한 마음의 저변에는 어떤 욕망이 있을까 의심했으며,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정의할 수 없으며 끝이 있는 까닭에 삶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냉소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진리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리라는 해답지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와 난관에 봉착했을 땐, 그 해답지의 표지에 있는 ‘하나님이 하신다’만 입으로 외워댔다. 알고 있는 것과 갖고 있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나는 그것을 혼동해 겉멋을 부리고 까불었던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가 기르는 수밖에 없다. 목사님이 하시는 강론의 내용이 듣기에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을 100%내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목사님처럼 서술해낼 수 있는 경지까지 공부하고 곱씹고 되뇌고 또 곱씹고 되뇌고 또 공부해야 한다. 진리, 그것은 신의 말씀이다. 몇 마디 알아듣는 것으론 전체를 안다 자부할 수 없는, 절대 녹록치 않은 ‘비밀’의 문서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 태도는 어떠했는가. 도대체 뭘 믿고 그리 만만해 했으며 뭘 보고 ‘안다’고 자부했던 걸까.
 
  그러나 어찌됐건 나는 진리를 무기로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겐 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건 바람이 아니라 의지의 표현이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볼 때 나누고 싶은 게 도리이고, 큰 자가 작은 자를 볼 때 마음이 쓰이는 게 도리이다. 진리라는 어마어마한 보물을 가진 내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비웃으며 나만 잘 되리라 다짐하는 건 분명 옳은 자세가 아니다. 이 세상은, 숨이 붙어 있는 날 까지 내가 발붙이고 살아갈 곳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이곳에 근사한 획을 그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꾼 그들처럼, 어둠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빛의 사람, 최고의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12월 말이면 인도에 간다. 우리보다 더한 뜨거움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1년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그곳에서 보낼 것이다. 성경신학도, 어학도, 그리고 여건이 주어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공부를 전심전력으로 할 것이다. 아프면서 몸과 마음이 고되었던 시간 동안 복잡해진 머릿속과, 새로 시작된 방황의 지점에서 또 이렇게 환기할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성한 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걱정이 되진 않는다. 정하신 날에 나를 보내기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고 준비해놓으신 주님의 뜻에 나를 맡길 수 있다는 것이 이리 포근하고 마음 편할 줄 몰랐다. 또한 인도에서의 시간들이, 나를 본격적으로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의 전초이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 선택한 사람, 중생한 이성 그리하여 진리를 아는 사람의 위력을 보여주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감탄하고 감동하는 순간에, 나를 움직이는 가장 최고의 힘은 하나님이며 나는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순수한 애도, 순수한 의도
이십대의 토막 회고록 <말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