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5-01-18 18:4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나는 다 잘했는데 너 때문에!”

사랑해서 부부가 된 사람들, 무엇이 문제일까


요즘 관심 있게 보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특정한 프로그램을 정해놓고 시청한다기보다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부부. 천재일우의 연으로 맺어졌다가 원수만도 못한 관계가 되어 눈만 마주치면 이를 가는, 망가진 관계의 사람들에 관심이 간다.
그들은 왜 척을 지게 된 걸까. 연애할 때부터 불협의 요소가 있었는데 모른 척 넘겼던 게 이제 와서 터진 걸까?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결혼해서 사랑이 생활로 안착한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 걸까? 그렇지 않으면 누구 하나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나? 살아오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일까? 그리고 근본적인 물음.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서로를 사랑했고 어떻게 부부가 되었던 것일까?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갈등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핏대 세워 싸우는 부부의 언어와 행동 어디에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다. 마치 이렇게 물어뜯기 위해 태어난 것 마냥 전투적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원인은, 무조건 상대에게 있다.
나는 잘했고, 나의 의도는 훌륭했으며, 내가 한 말은 농담일 뿐이고, 내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꼴통인 네가 도통 내 말을 들어 먹질 않으니 이 사단이 난 것 아니냐고.
나는 그 지점에서,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무엇이 누락되었기에 저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그리고 내린 결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성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취약한 점, 필요한 것, 견딜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지(정체성), 나와 적합한 사람에 대한 고민이 꼭 있어야 한다.
그 단계를 밟은 사람들에게라야 비로소 상대방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려는 노력이 수반된다. 상대를 알고 나면 이해와 존중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있으니 상대방에게도 싫어하는 게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걸 강요하지 않게 되고, 무턱대고 하라 하지 말라는 식의 폭력을 휘두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깊이 있는 이해와 존중 이후에야 신뢰가 찾아온다. 그 신뢰가 겹겹이 쌓여 부부가 탄생하면 합쳐진 두 사람 인생 분의 책임감이 생겨나게 된다.
소통은 그 굽이굽이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진통에 빼놓을 수 없는 과정으로 자리한다. 서로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차이와 다름과는 상관없이 충분히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 처음에 상대방과 사랑에 빠지고 부부가 되기까지는 분명 이러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날 이해하는구나, 이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아 하는. 그것은 서로의 언어와 세계가 통했다는 뜻이기에, 오해와 미움이 사이를 벌려 놓았다 할지라도 돌아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완벽한 사람도, 완전한 사랑도 없다. 그런 건 인간에게서 구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애초에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며 나약하다. 관계를 유지할 기본적인 신뢰는 필요하지만 맹목적 믿음과 의존은 위험하다. 어느 위대한 인간도 한 개인을 구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발생지는 ‘나’다. 나의 마음과 그 마음에 달린 눈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통한 지혜가 주어진다면 억하심정을 걷어내고 상대를 순수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상대는 늘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데 나 혼자 그를 두고 미워했다가 예뻐했다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하나님이 창세 전 나의 짝으로 맺어주신 그 사람임을 안다면 더 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싶다.
남자와 여자, 부부 그리고 부모 자식 관계는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이 땅에서의 섭리란 생각이 든다. 홀로 자족하는 하나님과 혼자서는 불안한 인간,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유기성 확증, 자식을 기르는 부모가 되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확인.
해박한 지식보다 유연한 지혜가 더 많이 필요한 오늘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유독한’ 부모의 자화상
순수한 애도, 순수한 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