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5-10-11 08: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유독한’ 부모의 자화상

<사도>

banner


영조는 52년의 재위 기간 동안 조선을 중흥기로 이끈 성군이다. 동시에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최악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상황을 차치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야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궁금함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도세자는 비행을 일삼던 광인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총명했으며 자라면서 예술적 재능에 두각을 나타냈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즐기는 등 활동적이었다고 한다. 영조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대리청정할 때도, 자유롭고 대범하며 진취적인 사고를 하는 세자의 뒤에 앉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영조였다. 아무리 요즘 같은 혈육 관계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내색은 못 하더라도 흐뭇한 게 아비의 마음 아닌가. 실제 역사적으로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기까지 했던 것은 영조 자신이 해결하지 못했던 심리적 문제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영조는 열등감 덩어리였다. 훌륭한 임금이었으나 천민 출신 후궁의 소생이었고,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 때문에 평생을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다. 그러한 탓에 ‘완벽’에 대한 영조의 집착은 목표이자 기준이 되었고, 그것을 아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왕가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아들의 예술적 재능은 잡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여겼고, 개방적인 사고와 혁신은 자신에 대한 도전과 오만으로 받아들였다. 어느새 움튼 미움은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를 점점 벌려놓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토록 사랑하고 또 증오했던 세자를 뒤주에 가두기에 이른다.
영조가 죽인 것은 아들의 모습을 한 자신의 두려움이었다. 완벽한 왕이 되지 않으면 들려올 비난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었다. ‘완벽’을 위해 학문에만 매달렸던 제 고루함과는 다른 유연함에 대한 시기였다. 상대의 순수한 의도와 마음을 의심하게 만든 피해의식이었다. 인정받고 싶은 울분과 욕망이었다.
이러한 아버지로 인해 세자는 뒤주에 들어가기 전 이미, 정신적 심리적인 사망 선고를 받지 않았을까 한다. 자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아웃’시켜 버린 아버지라면 정상적인 부모는 아닐 터, 그의 눈 안에 들고자 했던 어린 마음은 얼마나 병들고 망가졌을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문제는 이토록 커다란 불행을 낳는다. 이 불행은 개인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더 치명적이다. 개인에게도 불같은 고통일 것이다. 아들을 죽인 영조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을까.
마음의 문제는 ‘육체’와 함께 가는 것이고 ‘관계’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살아있는 한 평생을 두고 발생하고 사라지고 발생하고 남아있기를 반복할 테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해석 체계다. 과거부터 축적되어온 감정에 대한 해석,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이면에 자리한, 궁극적인 섭리에 대한 앎. 두 글자로 압축하면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지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나 어디에나 통한다. 교육에도, 정치에도, 학문에도, 인간관계에도. 지혜로울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곧은길은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그러나 버젓하게 우리 주위의 부모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영조의 모습을 보면서 거의 공황이 왔다. 어떻게 자식이라는 다른 인격, 다른 개체, 다른 인생에 자신의 규정을 강요할 수 있을까. 어찌 감히 그런 월권을 행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그 인생 나름의 길과 의미가 있을 텐데. 그렇게 무자비해질 수 있는 것은 자식이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과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엄연히 다르다.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부모는 많지 않다. 여기서 자녀 인생의 큰 그림이 갈린다.
좋은 부모의 첫 번째 조건은 지혜로움이라 생각한다. 영조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조금만 지혜로웠더라면 자식을 올바르게 사랑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사랑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제대로 전해주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평범한 악
“나는 다 잘했는데 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