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5-10-28 23: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평범한 악

<거짓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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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동물들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연쇄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를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을 일삼는 사기꾼을 악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악하다. 하지만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악함은 아니다. 이는 정신이나 마음의 어디 한구석이 망가진, 어디까지나 ‘특정한’ 사례의 악함이며 ‘임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 혹은 악행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는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따위의 일들이라 치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안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거짓의 사람들>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악함이 등장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악성, 죄성, 이기주의, 나르시시즘, 착취 등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겪거나 저지르게 되는 사사로운 일들 이면의 악(惡)들.
첫 번째 사례에 등장하는 강박증 환자는, 강박증으로 인한 고통을 멈추기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낸 악마와 계약을 한다. 한 번만 더 강박적으로 특정한 장소를 답습하고 확인하려 할 경우 자신의 아들을 바치겠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악마가 실재하느냐, 그가 상상하는 일들이 일어나느냐 따위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담보하려는 엄청난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사례에 등장하는 부모는, 무지가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큰아들이 자살할 때 사용했던 권총을, 막내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이런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새 총을 살 형편은 안 되니까 라는 이유로. 그 부모에게는 아들이 형의 죽음으로 어떤 심리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헤아리는 지혜도 없고, 그 결과 아들이 우울증에 걸려 성적이 떨어지고 절도를 할 때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 부분에 대한 지적 또한 부모로서의 자기들의 능력에 대한 비난이 일까 싶어 자기 합리화와 공격으로 일관하며 이 사태에 대한 죄책감도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마지막 사례에도 부모가 등장하는데 (아이들의 정신적인 문제 뒤에는 결국 부모가 있으므로) 이들은 잘 교육된, 세련된 소위 ‘배운’ 사람들이다. 이들 또한 절도 건으로 상담하게 된 아들에 대해, ‘유전적인 요인’ 운운하며 변명을 해댔다. 즉, 자신들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아들의 문제가 치유 불가능한 것으로 믿으려는 그리하여 아들을 단념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했던 모든 말 뒤에는 거짓이 있었고 그 안쪽에는 ‘위장’이 있었다. 위장은 흔히 정반대의 것을 숨기는데, 보통 악한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위장술을 쓴다고 한다. 자신들은 좋은, 사랑이 많은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자아상을 보전하기 위해 애썼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아들도 ‘유전이기 때문에 치료 불능한’ 아이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러면 자신들은 여전히 노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성 나르시시즘의 특징은, ‘굴복시키는’ 능력의 부재함을 이야기한다. 건강한 사람들이 진리나 신을 통해 자신을 굴복시키는 데 반해, 그들은 죄책감과 의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면 언제나 죄책감을 사라지게 (신이나 진리도 사라지고) 하고 강인한 자신의 의지(내가 옳다는)로 승리한다.
책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악인을 마주할 때 경험하는 감정을 혐오감과 혼돈으로 정리한다. 혐오감이 드는 이유는 악이 위험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사람을 오염시키거나 파괴하므로), 혼돈이 생기는 이유는 거짓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또한 ‘악’은 생명성을 해치는 것이며, 악한 사람은 사실 누구보다 겁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스콧 팩 박사는 정의한다. 그들은 자기 모습이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자기 목소리 듣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굳이 지옥에 갈 필요는 없는데 왜냐면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악(하나님이 싫어하심)은, 좀 더 촘촘하게 새겨두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있는 그물망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책을 통해 보이는 인간의 사악함이란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가. 실은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새에 이런 식의 악을 부리며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용서받고 마음대로 편안하면 안 될 것 같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냉정하게 돌아보는 작업을 하나님 앞에서 늘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지 않기
‘유독한’ 부모의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