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6-01-29 20: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의지와 의존, 그 애매한 경계 어디쯤 영화 <About a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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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나는 ‘의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가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외의 타인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한자 ‘人’은 각각의 획이 서로를 향해 기대어 있다. 기대고, 연결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글자. 인간 존재의 관계성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귀엽기까지 한 한자다.
미디어를 통해서건 주변에서건 아름답지 못한 형태로 서로에게 의존하는 수많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명품을 구입하는 아가씨, 아버지의 칭찬에 목매다는 아들, 남편의 늦은 귀가에 불같이 화를 내는 아내, 친구가 하라는 대로 비위를 맞추는 학생 등.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의 평가 여부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타인에게 있다고 여긴다. 즉, 자신에 대한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넘겨준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나 불행히도 이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이미 그런 채로 굳어져서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들이 그에 균형을 이루고 있는 탓이다. 알아채기도 쉽지 않지만, 그 이후도 만만치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균형이 깨지는 일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성경 앞에서 거듭 자기 성찰을 반복하는 방법뿐이다.
나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부모도, 남편도, 자식이나 단짝 친구도 ‘나’만큼 나에 대한 의무와 권리는 없다.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들, 가지고 있는 욕구와 열망, 바람,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결코 누구도 나만큼 알지 못한다. 고로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이도 나뿐이다. 상대방을 탓하고 원망하던 에너지를 내부로 향하게 했다면 그래서 이 사실을 좀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상처를 입는 일은 없지 않을까.
영화 <About a boy>는 건강하게 의지하고 있음의 아주 적절한 예랄 수 있겠다. 꼬맹이 마커스는, 우울증인 엄마가 자꾸 자살하려 해대는 통에 ‘2명으론 부족하다’는 위기감을 느껴 만년 백수 윌과 엄마를 엮으려고 애쓴다. 웃기고 슬픈 여럿의 에피소드 이후, 결국 윌은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잘 되지만, 자기 몫의 인생을 짊어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온기를 피워내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들 중 누구도 자기를 위해 상대방을 착취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 도움을 주지만 거기까지다. 절박한 상황이지만 살려달라고 타인에게 나를 내맡기며 무책임하게 굴지 않는다. 의존한다는 것과 의지한다는 것의 경계를 영리하게 알고 있는 게 보인다.
결혼 전에 남편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혼자서도 즐거울 줄 알아야 함께 있을 때도 즐거울 수 있다’는 말의 진의를 다시금 깨닫는 요즘이다. 홀로 충만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까 상대방한테 치근덕대고, 그렇게 관심과 애정을 얻어낸다 해도 성에 차지 않고, 결국 상대방의 목을 쥐고 흔들며 나 좀 어떻게 해 보라고 말도 안 되는 떼를 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하나 다르게 창조하셨다. 쌍둥이도 지문은 다르다. 우리는 각각 고유한 정체성과 성격과 감정, 기호와 사상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세상에 나는 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타인이, 나를 만족하게 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단 말인가? 나에 대해 샅샅이 아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난데 어떻게 고삐를 넘겨줄 수 있단 말인가?
설교를 들을 때마다 가장 인상 깊게 남는 한마디는 ‘하나님 앞에서의 나’다. 이것은 내겐 ‘하나님 그리고 나’로 들린다. 나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마주 봐야 할 상대가 야훼라는 뜻으로 말이다. 인간은 모두 욕망과 결핍의 덩어리다. 아무리 고상하다 해도 육체를 입고 있는 한 한계는 명백하다. 그들과 비교하며 나를 살펴본다 한들, 내가 또 다른 욕망과 결핍의 덩어리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좀 더 명확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또한, 그분은 나를 만들기까지 하신 분이기에, 어떤 때에 내가 의지하고 싶어 하는지도 아신다. 마음 편하게 믿고 기대기만 하면 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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