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6-03-09 21:1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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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비밀 하나 간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개인적인 비밀-프라이버시와는 개념을 달리한다-은 대체로 타인을 의식하여 만들어지는데 이는 수치심과 나르시시즘에 의해 비롯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 이미지를 보존하기 위해, 그리하여 이 불온한 욕망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비밀은 만들어진다. 특히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조차 자신을 속이고 그리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경우는 얼마나 허다한가.


탐정 구동치는 기본적인 탐정 업무 외에 ‘딜리팅’을 진행한다. 이것은 의뢰인의 비밀을 삭제해주는 일이다. 의뢰인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 속수무책으로 헤집어질 사적인 영역을 끝까지 잠그기를 원한다. 어차피 죽으니까 상관없는 것 아니냐 반문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기함한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그들을 죽어서까지 좋은 사람이고 싶은 집요한 욕망의 소유자로 묘사한다. 그런 까닭에 비밀의 그림자는 소설의 제목인 ‘월요일’처럼 길고, 그 은폐된 비밀들이 밀집된 악어 빌딩에는 늘 알 수 없는 악취가 도사린다.


탐정 구동치는 의뢰인들의 비밀을 삭제하여 자신의 사무실에 보관한다. 소설의 초입에서, 주요한 사건의 배후가 될 의뢰인이 등장한다. 연예 유통 사업에 종사하는 그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지인의 태블릿을 손에 넣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일들이 이 소설의 굵직한 줄거리이다(물론 그는 딜리팅을 의뢰하러 왔다).


김중혁의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은, 크게 독특할 것 없는 이야기에 품격을 더해준다. 다양한 인물들의 유기적 관계와 각 캐릭터별로 또렷하게 구축된 개성 역시 소설을 읽는 재미에 큰 몫을 한다.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장면에서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이야기도 스토리텔러로써 김중혁의 능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관전 포인트는 ‘딜리팅’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딜리팅을 의뢰한다. 어떤 이유는 납득이 가며 아름답기까지 하고, 어떤 이유는 추잡하고 또 어떤 이유는 아예 말해지지 않는다. 딜리팅을 수행하는 탐정 구동치의 인간적인 회의와 비애감은, 그 지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죽은 자는 죽은 이유로 알지 못하고, 지인들은 죽은 자의 딜리팅으로 인해 알지 못하는 비밀들이 자신의 사무실 빈자리마다 겹겹이 쌓여나갈 때마다 구동치가 느꼈을 감정들은 우리의 고독과도 결을 같이 한다.


비밀은 종종 거짓말과도 친밀하게 지낸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동생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알지 못한다고 하였고, 아브라함은 두 차례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 한가운데로 보내 버린 다윗은 어떠한가. 사실 이런 인물들이 한둘인가. 성경 속에는 우리가 안고 사는 죄의 원형들이 민망하리만치 원색적으로 나타나 있다(그래서, 그것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보기가 쉽다). 자기 주관이 생긴 인간이 자기가 좋고 싫은 것이 있는 까닭에 그것을 싫어하는 하나님 앞에 숨고자 하기도 하고, 혹은 자기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하므로 비밀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것이다.


비밀은 그것을 지닌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자기 모습과 분복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면 굳이 비밀을 만들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뜻대로 되어야 하니까 마구잡이로 진실과 거짓을 뒤섞고 은폐해 버리는 거다. 살아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뜻대로 되어야 하는’ 일 따위는 절대 없더라. 그런 건 아직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갓 인지해나가기 시작한,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어린아이나 할 수 있는 마술적 생각이다.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나라에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라는 더 기막힌 빈정거림과 함께 초조해 하는 이 나라의 수장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러게, 자꾸 비밀을 만드니 초조해질 수밖에. 제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해도 대중을 속이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을 거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장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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