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0-06-30 19:1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칼빈의 생애와 사상


오늘과 같은 경제 위기에다 교회의 위기까지 맞고 있는 이때에,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의 사상과 삶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는 데 있다.
종교 개혁의 사상 가운데 핵심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르네상스 운동은 헬라 로마의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종교 개혁은 바로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운동이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곧 신학의 타락과 변질에서 왔으며, 신학의 세속화와 합리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과학적인 잣대로 성경의 진리를 모두 부셔버리고 역사적 예수를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이른바 신학이 종교학으로 변질되어 혼합주의적 종교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한 자유주의 사상이 교회의 강단에서 전파되니 사람들은 이제 그런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어 교회를 떠나 버렸다.
그런데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한 방법으로 강단은 더욱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오락 프로그램과 절묘하게 섞어서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기독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 강단은 만담과 웃음거리로 만들어 즐겁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정도이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교회는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사상 즉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잠재력 개발이 복음인 양 선전되고 있다. 이런 책들이 서점에 널리 깔려 있다. 한국 교회도 여기에 질세라 아주 적극적으로 따라 가고 있는 형국이다.


칼빈은 오늘의 교회 개혁의 이정표

종교 개혁자 칼빈의 사상과 삶은 오늘처럼 방향키를 잃고 방황하는 교회들에게 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을 확신한다.
칼빈은 실제로는 종교 개혁의 제2세대로서, 기왕에 있었던 종교 개혁자들 예컨대 루터와 쯔빙글리 등의 사상과 그의 동료들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완벽하게 정리해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이다. 교회사학자 필립 샵(Philip Schaff)은 말하기를 “루터는 단단한 바위산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킨 사람이라면 칼빌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자를 새긴 사람이다”고 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칼빈은 지난 천년기에 있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16세기 교회의 어두움 가운데서 하나님은 루터와 칼빈을 사용해서 교회를 교회되게, 말씀을 말씀되게 하셨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이다.
그런데 칼빈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병약하고 고독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특별히 부름 받은 겸손한 종이었다. 우선 그는 하나님께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소명을 가졌을 뿐 아니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었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을 해석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유럽의 고급 언어인 라틴어를 자기의 모국어였던 불어보다 더 자유스럽게 구사할 줄 아는 학자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말씀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요 경건의 사람이었다. 또한 법학도로서 쌓은 논리적 사고와 당대의 유행하던 수사학적인 말과 글 솜씨 등이 뛰어났기 때문에 위대한 종교 개혁자요, 교의 신학자요, 성경 주석가이며 목회자요, 강해 설교자로서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였다. 그래서인가 1536년 그는 27세의 나이로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요』를 출판했다 .이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오로지 성경으로만 해설한 위대한 작품이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었다. 그는 이 『기독교 강요』를 수정 보완하여 1559년에 오늘 우리가 읽는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한 가톨릭의 대답이 없다는 것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너무나 성경적인 하나님 중심의 경건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 초판본 속표지에는 이 책이 <경건의 대전>이라고 했다.


칼빈의 사상은 삶의 전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칼빈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일차 자료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두말할 필요 없이 『기독교 강요』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의 『성경주석』이다. 칼빈은 계시록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성경을 주석했다. 이 주석은 목양의 현장을 생각하고 목사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는 그의 『설교집』이다. 칼빈은 강해 설교의 왕이다. 특히 그는 연속 강해 설교의 대가였다. 칼빈의 종교 개혁은 강단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는 제네바에서 전후 27년 가까이 말씀의 종으로 살았다. 그는 1주일에 6, 7회의 설교를 하면서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에게 복음으로 새 생명을 주었다. 넷째는 그의 『편지』이다 칼빈은 설교 사역과 교수로 가르치는 일과 교회 개혁 활동 등 그 바쁜 틈에도 교회의 지도자들과 국왕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줄기차게 편지를 써서 종교 개혁의 정당성을 알리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변증했다. 다섯째는 칼빈의 『신학 논문』이다. 칼빈은 신학 논쟁이 있을 때마다 논문을 써서 발표했고 그것은 다시 책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16세기 칼빈의 신학과 신앙을 제대로 접하지 않고는 신학을 공부했다 할 수 없고 칼빈의 성경 주석과 설교집을 읽지 않고는 개혁주의적 목회를 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칼빈은 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삶의 모든 영역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칼빈의 작품을 잘 연구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성경적 세계관을 세우는 데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현대 사상과 세계의 구조 즉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경제 시스템은 칼빈의 영향 때문이며 서구 역사의 정신적 기조는 결국 칼빈에게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칼빈을 모르면 민주주의를 바로 안다고 할 수 없고, 칼빈을 모르면 서구 문화의 기틀을 이해할 수가 없다. 칼빈의 종교 개혁의 후예들은 영국의 퓨리탄, 스코틀랜드의 요한 낙스를 중심으로 한 장로교회, 불란서 휴그노파, 화란의 개혁교회 특히 19세기 아브라함 카이퍼가 주축이 된 칼빈주의 부흥운동은 영국의 퓨리탄 운동과 함께 미국 사회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경건과 학문의 조화를 이룬 칼빈

칼빈은 일생동안 교회의 개혁자였지만 그는 또한 진실한 목회자요 대 강해설교자였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크게 사역한 것은 1559년에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였다. 그는 이 대학을 세우면서 기도하기를 “이 학교가 경건과 학문이 있는 대학이 되게” 해 달라고 했다. 그의 꿈은 이루어져서 유럽 각국의 교회 개혁의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첫해는 161명이 공부하러 오더니 10년 후에는 1600명의 학생들이 몰려 왔다. 여기서 배출한 인물들이 졸업하고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교회의 개혁을 이루었다. 교육의 성과는 그렇게 컸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게르만 민족에게만 영향을 끼쳤으나 칼빈의 사상은 전 유럽, 전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네바 아카데미」는 신학의 센터일 뿐 아니라 선교의 센터이기도 했다.
교육을 통해서 인물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칼빈은 종교 개혁자로서 진작부터 깨달았다. 유럽 각국에서 제네바 아카데미로 몰려온 청년들은 사도 시대 이후 가장 완벽하고 경건한 훈련을 받고 모두 개혁주의자들이 되어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종교 개혁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율시누스는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을 만들었고, 요한네스 보겔만은 돌트총회의회장이 되고 여기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만들었다.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요한 낙스는 피의 여왕 메리를 공격하고 장로교회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제네바 아카데미는 종교 개혁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걸어 다니는 병원,
칼빈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

필자가 세운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 부속 「칼빈 박물관」은 세계 유일의 칼빈 박물관이다. 관람객들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40년 동안 칼빈의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칼빈 박물관을 세운 것은 칼빈의 위대성을 예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도 병약하고 고독하고 불행했던 한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그를 도구로 사용하셨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라고 한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칼빈은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병약했다. 그는 위장병에다 기관지 천식, 신경통을 비롯한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며 하루에 한 끼 정도의 식사를 하고 늘 잔기침을 하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사람 칼빈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연약한 자를 들어서 주님의 교회를 개혁했으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필자는 우리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고 교회를 교회되게, 말씀을 말씀되게,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디아스포라 교회와 한국 교회가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이 주장한 철저한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고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그의 정신이 오늘의 교회에 재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부흥되기를 소원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칼빈이 활동한 16세기의 분위기
문화의 성경적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