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5-10-21 15:1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여호와 주권성과 목회 원리 (2)


1. 여호와 계시 사건으로서 목회

<지난 호에 이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존재와 만사 만물에 대한 절대주권성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원천이며 이상이며 목표다. 이러한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이 없다면 말은 주의 몸 된 교회라고 하지만 목사는 목사대로 교인들은 교인대로 각자 자신이 교회 주인이 되어 교만한 자리에 앉아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교회의 혼란과 분쟁의 원인이 된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필자가 사역했던 교회 현장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서,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존재와 여호와의 절대주권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설립 삼십오 년을 맞이하는 저희 교회는 십칠 년 동안 연속해서 세 차례의 분열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첫 번째 사건은 당시 필자가 집사의 직임을 맡고 있을 때다. 목사는 강단권을 남용해 성도의 행위에 대해 지적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이에 성도들은 목사의 설교와 행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결국 성도 약 삼분의 일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저희 교회 성도 중 한 분이 목사가 되어 같은 광주 지역에서 다른 교회를 개척할 때 발생한 사건이다. 그 목회자가 교회를 설립하자 본래 있던 교회의 목사를 싫어하던 성도 절반 정도가 다시 교회를 떠났다. 두 번째 분열이다. 그다음은 내가 장로로 재직하고 있던 때였다. 두 차례의 아픔을 겪은 후에도 교회 내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고,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이 갈등은 담임목사가 마지못해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김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같은 노회 소속의 새로운 목사를 다시 청빙했다. 교회는 잠시 평안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난 후, 갑자기 새로 부임한 목사는 자신이 소속된 노회를 비방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장로들과 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목사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교인 신방을 시작하면서 교회 성도들 중에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을 모았다. 그리고 결국 저희 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노회 소속이 되어 가까운 곳에 교회를 다시 개척했다. 이로 인해 성도들 삼분의 이 가량이 저희 교회를 떠났다. 이것이 저희 교회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교회 섭리의 역사였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3차에 걸쳐 겪게 하신 시련의 역사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17년 동안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로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사건마다 인간과 인간이 주고받은 상처보다 그 순간순간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깊은 섭리를 서로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즉 수없이 들어왔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실제로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기고를 통해 회고하고자 하는 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성을 성도 각자 스스로 진리의 말씀에 매진하면서 말씀 중심의 교회 생활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사람이 아닌 오직 성경 진리에 의존해서 배워가지 않고, 인간인 목회자에게 의존하거나 목회자에게 책임을 돌렸던 것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절대주권성을 신뢰하기보다 자기중심의 변명과 교만함이 교회 분열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이처럼 세 차례의 시련을 겪은 저희 교회는 더 이상 성경을 가르칠 목사를 청빙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인간에게 의존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성도들 안에 모였다. 그래서 남은 성도 십여 명은 오직 성경 공부를 위해서만 모였다. 박용기 목사의 ‘의미분석 성경개론’과 성경 주석인 ‘성경강론집 1권’을 통해 각각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경 진리에 몰두하면 할수록 교회의 유일한 지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임을 거듭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보혜사 성령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진리로 깨닫는 은혜를 보여주신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성경을 예습하고 복습하는 성경 공부의 역사가 어언 17년간 흐르고 있다. 그 이전과 달라진 점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의존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신앙관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인지라 지금도 불편함과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저희 교회는 일어난 사건에서 사람을 그 문제의 원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박용기 목사의 성경주석인 ‘성경신학총서’를 탐독하면서 성경이 왜 절대진리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각자 확인하고 있다. 성경을 의존하는 신앙생활이라 하더라도, 성경이 진리의 요건인 논리적 일관성과 구조적 통일성을 확증하지 못한다면, 결국 성경은 인간의 자의에 따라 왜곡되고 악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희 교회는 함께 공부하는 지체들이 발표할 때마다 발표자의 입술은 전적으로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시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성을 찬양하는 신앙생활이 저희 교회의 토대가 되고 있다.
그동안 겪었던 저희 교회 분열의 역사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라는 욥의 고백처럼, 귀로만 듣던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이제는 눈으로 뵙고 확인하는 무한한 은총의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성도가 성경 전체의 논리적 통일성에 의해 여호와의 존재를 확신하고 그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고백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아직 남아있는 육체의 소욕 때문에 온전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외적으로는 교만에 사로잡혀 지체를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교회 문화는 거의 불식되었다. 언약대로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적 절대주권성에 대한 확신으로 제사보다 형제에 대한 자비를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호칭 여호와의 존재 확증과 그분의 절대주권성에 대한 확신의 신앙이 없다면 교회와 성도를 통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찬양하는 신앙은 불가능하다. 이 모든 확신과 찬양은 전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운동력에 의한 것이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한경진 목사 (산수서광교회 / 광주 성경신학학술)

여호와 주권성과 목회 원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