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1-11-29 20:2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신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과정 제안: 성경 전문가 양성과정으로서 목회학


한국 교회를 비롯해 세계 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세상 통치에 대한 엄격하고도 엄중한 섭리를 2년 동안 겪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은 아니지만,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 능력을 확연하게 계시할 때는 반드시 인간에게 ‘죄악(罪惡)’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세전에 정하신 뜻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절대주권적으로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역사를 통치하시며 자신의 정한 모든 계획을 완성할 때 모든 피조물을 심판하신다. 인류 시조에게 악과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타락과 심판을 섭리하셨다.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던 노아 시대의 모든 인류를 불의하다고 규정하시고 노아 가족만 구원하시는 무섭고도 또한 긍휼의 풍성하심에 따른 위대한 섭리를 하셨다. 노아 시대 사람들이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보다 더 불의하기 때문에 심판당한 것이고 우리 성도들은 노아 시대보다 하나님을 더 잘 경배하기 때문에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죄에 대한 경중을 피조물인 인류가 어떻게 정할 수 있겠는가? 한국 교회의 부패 상황을 두고 부패한 중세 로마가톨릭보다 더 심하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평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과 심판 섭리 속에서 교회당에는 올 수 없지만, 더 많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성도들도 많다. 교회를 성전으로 착각했던 것을 깨닫는 성도도 있는가 하면, 이른바 대예배는 마치 율법을 지키듯이 반드시 정한 장소와 시간에 지켜야 한다는 규범이 무너져 버리기도 했다. 십일조를 포함해 하나님 앞에 헌금을 내지 않으면 마치 금방이라도 저주가 내린다고 들었던 교인들은 헌금하는 행위와 상관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감금되는 것을 보면서 ‘속았다’고 자각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소속 교회 활동에 (타의에 의하든 자의에 의하든) 많은 시간을 보냈던 성도들 중 유튜브와 각종 SNS 강좌를 통해 양질의 성경공부 강좌를 보면서 수십 년 교회를 다녀도 성경에 무지했던 자신의 답답하고 딱한 처지를 깨닫는 자도 많다. 한국 교회의 부패 원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찾을 수 있지만, 교회의 본질과 신앙의 근본 토대를 관련지어 본다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경에 대한 무지’일 것이다. 특히 성경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절대진리로 확정하지도 않고 그래서 확신도 없는데 용감하게(?) 교회 강단에서 수많은 교인들을 교육하겠다는 현실은 정말로 참담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교회의 유일한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권위가 없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성립할 수는 없을 터!
기자는 지난 9월 29일 한강중앙교회에서 신학 교육 개혁과 관련해 한국 기독교 지도자 두 분의 대화를 지켜본 바 있다. 한국 교회 초교파 증경총회장 중심으로 한국 교회 개혁 운동을 실천하는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대표 신신묵 목사와 미국 기독 대학 오이코스대학교 설립자인 김종인 총장의 만남을 눈여겨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한국 기독교의 원로다. 공통점은 한국 교계와 신학계가 성경권위를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없으며 그 몰락은 현재 매우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루속히 성경권위 회복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학교 커리큘럼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데 같은 의견을 주장한다. [두 사람은 위기에 처한 신학 교육의 대안으로 박용기 목사의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을 채택했다. 관련사이트는 두 곳 www.ibt.or.kr/www.tbtlogos.com이다. 전자는 로그인 없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곳이며, 후자는 로그인하여 체계적으로 공부하면서 논문지도를 받는 곳이다.(한국크리스천신문 216호 1면 참조) 기자는 이 두 사람이 주장하는 일부 커리큘럼 수정이 아닌 근본 수정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신학 교육의 정상화란 다름 아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신적 계시로 확증할 수 있는 성경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아래와 같이 신학 교육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바다.


1. 교회 표지는 하나님의 말씀인 절대진리 성경밖에 없다

현재 한국 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는 성경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성경 기록을 인간의 기록으로 본다. 인간을 원저자로 보려고 한다. 모세나 여호수아, 사무엘이나 에스라, 이사야 등등 성경을 기록한 자들이 성경의 저자라고 본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자신의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때로는 탁월한 상상력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기록한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치 진리처럼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구약이든 신약이든 상관없이 적용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靈感)을 받아 기록한 권위 있는 말씀이 아닌 증거를 구약이든 신약이든 논리적 통일성이나 구조적 통일성이 없다는 점에서 찾는다. 이른바 이러한 주장을 통칭해서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이라고 한다. 많은 신학교 교수를 비롯해 목사나 목회 후보생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신구약 내용의 각각의 논리적 일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구약과 신약의 논리적 통일성은 훨씬 더 어려운 문제임이 틀림없다. 가령 ‘구약이 이러하므로 신약이 이렇다’ 혹은 ‘신약이 이렇기 때문에 구약이 이렇다’라고 확증하기에는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성경이 절대진리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논리적 일관성은 어떻든 반드시 증명해야만 한다. (성경의 논리적 일관성과 구조적 통일성에 관해서는 앞에서 소개했던 www.ibt.or.kr을 꼭 참고하길 바란다) 성경권위에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리고 성경 본문을 통해 무엇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안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교회 강단에 함부로 설 수는 없다고 본다. 목사 자신은 성경을 절대진리로 증명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그 말씀을 따라 살라는 말은 허구를 조장한 위선의 앞잡이가 될 뿐이다. 


2. 신학 수업 첫 시간은 창세기, 마지막 시간은 요한계시록이어야 한다

앞의 한국 기독교 두 원로 지도자들이 신학 교육의 대안으로 공감했던 박용기의 성경신학 교육 과정을 보면 첫 시간은 창세기 1장이며 마지막 시간은 요한계시록 22장이다. 그런데 현재 3년 과정인 6학기 일반 신학교 M.Div.(목회학)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다. 성경 원어, 조직신학, 역사신학, 기독교 윤리, 실천신학 등 수십 개의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다. 이렇듯 신학교 목회학 과정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논리적 연관 관계를 입증하는 교과과정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교육과정이란 좀 더 상세하게 말하면 창세기 1장 내용을 단일한 주제로 묶을 수 있다면, 그러한 주제 다음에 왜 2장의 그러한 내용이 나오며 그리고 다음 3장에 그러한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가령 3년 과정에서 1학기는 창세기부터 열왕기까지, 2학기는 역대기부터 에스라까지, 3학기는 시가서인 욥기부터 아가서까지, 4학기는 선지서인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5학기는 복음서인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6학기는 여러 특징을 지닌 기록들인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의 논리적 연관 관계를 가르쳐 줘야 한다. 목회학 과정에서는 무슨 지식을 가르치든 앞의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가르쳐야 교회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을 받은 목회를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질이 마련된다고 본다. 이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벅찬 과정임이 틀림없다.
문법적인 해석부터 역사적 해석 그리고 신학적 해석까지 하면서 성경 전체의 논리적 일관성을 확증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벅차다는 이유로 이러한 성경 연구 과정을 빼고 목회 전문가를 교육할 수는 없다고 본다. 3년이 아니라 6년이 걸리더라도 성경의 절대 진리성은 목회에서 알파와 오메가다. 그런데 성경은 세상의 어떤 책을 읽듯이 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작정 읽는다고 뜻이 드러나거나 하나님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집중적 공부가 필요함이 틀림없다. 성경 내에서도 논리적 연관성을 찾기란 짧은 시간 내에 불가능하다. 가령 시편 150편을 1편에서부터 150편까지 논리적 연결어 ‘그러므로’를 사용해서 주장과 근거로 된 논증 구조를 만들라고 한다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렵고 불가능하다고 앞서 제안한 이러한 요구에 충분히 답하지 못하거나 치밀한 진리 논증의 과정을 무시하면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세상 논리학자에게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목회학 과정이 마치는 날, 졸업 요건을 충족했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목회학을 공부한 나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논리적으로 모두 연결할 수 있는가?’


3. 세상 정보와 지식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말씀을 이해하는 도구다

성경의 논리적 일관성을 확증하지 못하면 세상의 수많은 정보들을 모아본들 목회와 신학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없다. 오히려 세상의 복잡하고 매력적인 과학 정보나 철학 사상에 매몰당하거나 희생양이 될 것이 뻔하다. 가령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 사건에 대한 하나님 중심의 신학적 판단을 할 수 없다면 진화론을 반박할 수 없다. 진화론을 어느 정도 알기 위해서는 진화론을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진화론을 탐구하는 동안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 전체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진화론에 점령당하거나 아니면 무작정 배척해야 한다. 성도들에게도 진화론에 귀를 닫으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정보를 귀 닫거나 배척한다 하여 내가 믿는 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배척은 진리 논박의 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신학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목회의 유일한 근본이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를 하나의 통일된 절대진리로 확정하는 것이다.
가령 한글을 정확하게 배운 이유가 바로 한글로 번역한 ‘성경전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한글뿐 아니라 모든 언어의 용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경권위를 깨닫기 위한 공부에 전념하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문학, 예술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의학, 기초과학, 공학 이론, 기계 공작이나 조작 이론 등등 모든 지식이 성경을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는 것과 연관되어야 한다. 이른바 ‘통합학문’이라는 용어를 성경의 논리적 일관성과 관련지어 본다면, 세상의 모든 학문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성경의 수천 가지 다양한 사건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확신에서 나온다. 이렇게 보면 대학 4년을 마치고 ‘목회학’ 과정에 등록하는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한 모든 수단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지식을 모두 활용하여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왜 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입증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여러 가지 진단들을 신중하게 고려해 본다면, 성경은 함부로 펼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성경을 세상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진리로 입증하는 과정은 단기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이 확인한 것을 다양한 층이 모인 교회의 교인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숙련이 필요한 과정이다.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해야 하는 절박한 요구를 받고 보면 현행 목회학 과정의 교육과정은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성도들을 진리로 양육해야 하는 절박한 일로 보면 다른 길이 없는 것도 분명하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지 않고 목회를 잘한다고 하는 것은 머리 없는 몸과 같다. 반복해서 강조해 본다면, 목사 안수 받기 전에 목사 후보생은 스스로 한 번 진단해야 할 것이다. ‘나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모든 기록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위 있는 절대진리로 확증했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배윤리 권사 (교회동역자협회 / 객원기자)

W.C.C.의 사회구원적 기독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
신학 교육 정상화의 유일한 대안: 성경 연구 과정 중심으로 재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