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집사님께
“하나님은 연약한 집사님을 통해 자만한 저를 부끄럽게 하셨어요.”
집사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어쩌면 편히 잠드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교회 개척 당시 집사님으로 인해 마음을 많이 아파했던 새내기 성경 교사예요. 놀라셨죠? 요즘은 교회 당회장을 사임하고 누구나 원하시는 분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때로는 청소년들도 가르치고요. 지금은 교회가 성장해서 ‘호크마 하우스(지혜의 집)’라는 노인 복지시설까지 있거든요. 좋은 음식을 먹을 때나, 좋은 옷을 입을 때나, 좋은 집에 거할 때마다 집사님 생각을 하게 돼요. 그 생각을 지상에라도 공개서한을 통해 다 털어놓고 싶어서 편지를 쓰고 있어요.
1977년 11월에 섬기시던 교회 목사님이 갑자기 떠나시고 저와 함께 다시 교회를 개척하셨잖아요. 집사님은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시고 외롭게 고달픈 생활을 하셨지요. 20여 명의 성도 중에 집사님이 가장 궁핍한 처지였으니까요. 그런데도 밝은 얼굴에 항상 가벼운 미소를 잃지 않으셨거든요. 입으신 옷이나 신발 또는 들고 다니시는 손가방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변변한 것이 없었잖아요. 저 역시 어려운 때였지만, 집사님보다는 나았으니까요. 제가 집사님으로 인해 많이 울었다는 사실을 모르실 거예요. 새벽이면 강대상 뒤에 엎드려 기도하며 남모르게 많이 울었어요. 집사님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시는 열정이 저로 많이 울게 했답니다.
집사님은 너무 힘든 직업을 가지고 계셨잖아요. 수도가 없는 달동네에 물을 공급해주는 일을 하셨지요. 낡고 녹슨 손수레에 커다란 물통을 싣고 끌고 다니시는 힘든 일을 하셨거든요. 주일 외에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남자도 하기 힘든 중노동을 하신 거예요. 집사님은 거동이 좀 불편하신 몸인데도 밝은 모습으로 천직처럼 아시고 사셨잖아요. 전에 목사님의 가르침을 변함없이 충실히 이행하시며 사시더라고요. 교회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성도들이 모르는 사이에 처분하고 떠나신 목사님이지만, 주의 종이라 해서 원망을 하거나 불평 한마디 없이 충성을 다하셨어요. 떠나신 목사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매 주일 빠짐없이 이른바 ‘십일조’ 연보를 드렸으니까요. 구약성경의 말씀대로 엿새 동안 부지런히 달동네에 물을 공급해주고 얻은 수입에서 한 푼도 빠짐없이 이른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셨거든요.
주일 성경 공부 시간에 ‘십일조’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드렸죠.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먹고 살 때는 ‘십일조’를 드린 사실이 없지요.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생활할 때부터 ‘십일조’를 드렸거든요. 땅에서 나는 소산물은 불결하므로 거룩한 양식으로 속하기 위해 소출의 ‘십일조’를 제물로 드려야 했어요. 이는 신약시대 하늘로부터 신령한 만나와 같은 참 양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거든요.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두 거룩한 백성이지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어느 것 하나 내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무엇을 하든지 오직 주를 위해 살아야 하거든요.
거듭거듭 가르쳐드려도 집사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철저히 ‘십일조’를 하셨어요. 전에 목사님께서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므로 복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성경에 ‘십일조’를 내고 복을 주시나 안 주시나 시험도 해보라고 했다는 거예요. 집사님은 제가 아무리 성경적으로 가르쳐드려도 전에 목사님이 가르쳐준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으셨을 거예요. 도리어 심한 갈등을 느끼기도 하셨겠죠. 큰 수입을 하시는 것도 아닌데 매 주일에 빠짐없이 정성을 다해 드리는 ‘십일조’ 연보는 저를 너무 서글프게 했으니까요. 예수께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 궤에 넣는 것을 보시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신 사실이 기억나더군요.
새벽이면 강대상 뒤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많이 울 수밖에 없잖아요. ‘하나님 아버지! 저렇게 어려운 집사님의 봉사로 주의 몸 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하나요?’ 거듭 반복하며 울다가 한숨 쉬기도 하며 기도를 끝내도 괴로운 마음은 여전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자비량 목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거든요. 전임 목사는 교회당 전세금을 가지고 사라졌으나 나는 도리어 아무 보수를 받지 않고 자비량 목회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취해 있었거든요.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의 봉사를 통해 내 자비량 목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사정없이 짓밟아버리셨어요. 연약한 집사님을 통해 자만한 저를 부끄럽게 하셨어요. 저희 부부는 깨닫고 나서 집사님이 연세가 드시면 우리가 모시고 살자고 다짐했어요. 긍지와 자부심으로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저로 올바르게 깨닫도록 하셨으니 당연하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집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잖아요. 지방에 사시는 분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잖아요. 한편으로 섭섭했으나 집사님으로는 매우 잘된 일로 생각했어요. 그 뒤로 집사님은 교회를 떠나시고 1년 가까이 세월이 지난 후, 갑자기 집사님이 찾아오셨죠. 너무 귀티 나는 모습으로 찾아오셨거든요. 못난 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오셨다고 하셨어요. 집사님을 뵙는 순간 너무 반갑고 기뻤거든요. 이제는 낡은 손수레를 끌고 달동네로 물을 나르지 않아도 되잖아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환호를 했죠. 한편으로는 집사님이 연세가 드셔도 제가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따른 비굴한 생각도 있었겠죠. 요즘 제가 교회 노인복지관(호크마하우스)을 드나들 때마다 집사님이 생각나곤 합니다.
집사님! 정말 감사해요. 하나님께서 집사님을 통해 긍지와 자부심으로 뭉쳐진 어리석었던 저를 오늘의 저로 만들어 주셨어요. 목회비를 받는 목사님들을 보면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지 않는다고 냉소적인 자세로 대하기도 했거든요. 물론 정치적으로 강제해서 받는 것은 아름다울 수 없지만요. 지금은 많이 달라져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대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요. 집사님을 통해 가난하게도 살고 부하게도 사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거든요. 집사님 아직 살아계시면 한번 뵙도록 해요. 스승님으로 잘 모실게요. 어디에 계시든지 부디 주안에서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