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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18 18: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과학적 실증주의 신인상파

인상파의 전개 (1)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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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탄생된 인상주의는 미술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의 혁명이었다.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시도는 인상주의로 빛과 색채에 관하여 완벽하게 혁명을 완성하였다. 그 이유는 과학 기계의 시대와 더불어 계몽주의 사상에 힘입었으며 특히 사진기와 프리즘 및 광학기술의 발달은 색에 대한 인식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상주의자들은 회화를 통하여 새로운 색채 예술을 실현해 가면서 다른 예술 분야를 선도해가며 가장 진보적인 예술로 평가 받게 되었다.
인상주의는 1874년 8회에 걸쳐 12년 동안 시냑과 쇠라의 신인상주의 선언이 있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인상주의가 지속되는 10여 년의 과정에서도 빛과 색에 대한 시험은 계속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발견한 순간 포착된 인상의 색을 통하여 화면 전체가 밝아지게 되고 생동감을 얻은 화가들은 더 밝게 화면을 구성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철저한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결국 색채분할이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른바 병치 혼합에 의한 점묘법이다.
점묘파로 일컬어지는 신인상파는 파레트에서 물감을 섞지 않고 원색을 색 점으로 표현하여 색을 분할시킴으로 인상파보다 더 밝은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즉 색의 혼합에서 색을 섞는 것은 감산혼합이지만 색 점을 찍는 병치혼합은 중간혼합이 되므로 감산혼합보다 더 밝게 된 것이다. 또한 동시대비 법칙에 따라 보색은 빛나는 색조를 보여주고 주변의 어떤 색과도 어울리게 된다는 이론을 펼쳤다.
신인상파의 대표적 화가 쇠라는 이러한 이론에 따라 개성적인 색채로 작고 균일한 색 점을 철저하고 정밀하게 구성하여 감상자의 눈에서 혼합된 색채는 더욱 밝고 선명하게 보이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점묘법에 의해 그려진 그림들은 작은 입자가 흔들리는 듯 반짝이며 윤곽과 형태는 색 점의 크기로 조절되어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즉, 색 점의 크기와 색조로 형태와 거리감을 철저하게 계산해 표현하였던 것이다.
당시 과학은 눈부시게 발달을 거듭하여 각종 과학기계가 발명될 뿐 아니라 과학에 의해 모든 사물을 증명하려는 실증주의 사상이 확산되고 있었다. 즉 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고 과학에 의해 증명될 수 있어야 믿을 수 있다는 사상은 미술사조에 큰 영향을 끼쳐 인상파와 신인상파를 탄생시킨 것이다.
신인상파를 주창한 쇠라는 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짧은 인생에서 예술의 영원성을 부여하며 실명의 위기에 이르러서도 커다란 캔버스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붓질에서도 순간의 인상을 승화시키고자 영원성을 향한 열정으로 표현하였다. 신인상파의 작업방식은 점묘 또는 분할주의 이론을 철저하게 따라 안정감과 영원성으로 견고한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하였다. 실제로 쇠라가 죽은 후 신인상주의는 당시 부뤼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고 후에 야수파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논리적 분석적 태도는 입체파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그의 대표작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념과 열정으로 2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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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자화상 입체주의
동방의 신비주의 ‘비잔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