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라이프

 
작성일 : 16-08-25 21: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이사 하던 날


울 딸이 이사를 했다. 사위가 서울에 근무하게 되었고, 당분간 나는 딸과 함께 살기로 했다. 그리 넉넉한 살림이 아니다 보니, 예산에 맞추어 내가 거처할 방 한 칸이라도 있어야 하고 다섯 살 손녀 서윤이랑 네 식구가 살 집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근교에 집을 얻기로 하고, 한 달 남짓 걸려 겨우 집을 구했다. 전라도 광주에서 경기도 광주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당일에 이사가 되지 않고, 이사 전날 짐을 차에 싣고,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그래도 일정이 빡빡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약속을 하고 우리는 먼저 출발했다.
새벽에 비가 조금 내리더니 아침이 되니 그쳤다. 다행이었다. 딸과 나는 피곤도 잊은 채 겨우 청소를 마쳤다. 그리고 더욱 아늑하고 정돈된 집으로 가구를 배치할 요량으로 줄자로 넓이와 길이를 재가며 가구 배치의 구상을 마치고 이삿짐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이삿짐 차가 고속도로에서 전복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오! 하나님! 순간 어둠이 엄습해왔다. 하나님이 버린 것만 같았다. 적당히 놀라고 슬퍼야 눈물도 나오는 법, 너무나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혀 할 말도 없었다.
이렇게 끝내자고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인생은 아니잖은가? 콩당콩당 뛰는 심장을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며 살길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뿐,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어려움을 주셨사오니 잘 견디게 해주시고 내 곁을 떠나지 마시고 항상 함께 해주시라고. 다 무너졌을 때 나의 연약함을 터득하게 하신 하나님, 나에게 찬양을 만들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가 담긴 시간인 것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실제로 겪어 보지 않게 한다면 하나님 살아계심과 그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어찌 깨달았다고 말하겠는가? 인생에 있어 무너지지 않는데 어떻게 회복해 달라는 기도를 하겠는가?
갑작스러운 상황을 감내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차에 있는 물건을 건져 봤자 사용 불가라 하니, 차라리 쓰레기 처분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런 참담한 일이 있을까? 더욱이 어처구니없게도 보험가입이 안 되어 있는 업체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보상은커녕 알고 보니 오히려 도와줘야 할 형편이었다. 싸우다 죽을 수 있겠다 싶어 시원하게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주신 자도 여호와요, 가져가신 자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딸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짠했다. 산다는 게 별거냐 하지만 닥치고 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죽어야 산다는 진리 앞에서 까짓것 죽게 하면 죽지 뭐, 아프게 한 대로, 살게 하는 대로 살지 하고 일어서려 하는데 딸이 내게  “엄마, 하나님이 새살림으로 바꾸어 주려고 쓰던 물건을 모두 다 버리시게 한 것 같아.” 옆에서 놀고 있던 다섯 살 서윤이가 덩달아 “할머니, 하나님이가 이렇게 큰 집으로 이사 오라고 했어? 참 좋다 하나님이가.” 순간 뭉탱이 같은 울음이 올라왔다. “그래 하나님이 이렇게 넓고 좋은 집을 주셨단다.” 하고 서윤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내 소유가 아니어도 욕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 은혜 잊지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 기억하며 우리 행복하게 살자며 몇 번이고 되뇌었다. 딸은 살림살이를 구입해 가면서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아주 버리지 않는다 하지 않았던가?
이사 온 지도 벌써 5개월. 서윤이가 산책하자며 내 등을 떠민다. 집을 나서면 천진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청순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서윤이는 이 꽃 저 꽃 이름을 불러주며 “할머니는 그것도 몰라?” 한다. 어린이집에 숲 체험 선생님에게 꽃 이름을 배웠나 보다.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텃밭에도 풀을 뽑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 바랭이, 쇠비름이 참 이쁘게도 자라 시골 할머니 보고 웃고 있구나. 풀밭에 앉아 있노라니 하얀 나비가 쇠비름 꽃에 앉아 노니는 것도 예쁘다. 70줄에 앉은 노인 눈에 예쁘지 않은 것이 있을까? 딸은 엄마는 아프다며 일한다고 투덜투덜, 그러나 꼼지락거릴 수라도 있어서 좋고, 만질 수 있는 텃밭이 있어 좋기만 한데. 서윤이가 갑자기 나더러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란다. “서윤아 어디 사니?” “퇴촌면 관음리 290 다시 2번지 살아요.” 하고 또박또박 야무지게 대답한다.
세상의 기쁨은 형통하고 편안할 때만 나타나는 감정표현이지만 하늘의 기쁨은 시험 중에도 기뻐하게 하고 육체의 아픔도 잊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는 확증이라 여겨진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오늘도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름을 불러본다.
여호와여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권사 강미정 (광주 산수서광교회)

기다리는 마음
이 모습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