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인물(6) - 은혜 위에 견고케 하신 반석, 베드로
2013년 3월 14일,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웅장한 종소리의 역사적 의미는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권 교황, 가톨릭 역사상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의 탄생이었다. 청빈의 기치 아래 13C 초 세속화된 가톨릭의 개혁을 선도했던 성(聖) 프란치스코를 따라 프란치스코 1세라 호칭한 아르헨티나 태생의 베르골리오 추기경,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인용하자면 그는 콘클라베(Conclave. 교황선출 비밀회의)에서 교회가 본연의 영적 임무에 충실할 것을 강변했다고 한다. 워싱턴 대주교 우얼 추기경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해 온 그의 발언이었기에 추기경단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덧붙였다. 이와 반대로 7~8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때 다소 방관에 가까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한 경력, 양친 모두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그의 혈통은 결국 파격적 개혁을 외칠지 모르는 가나의 피터 턱슨 추기경보다는 보수적인 바티칸 및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혁 세력을 만족시킨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어쨌거나 근검 절약과 빈민 구제로 존경받아 온 신임 교황은 “내가 바라는 교회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라 강조하며 최초로 여성에게 세족례(洗足禮)를 행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명쾌히 답변케 하신 베드로의 지혜, 곧 복에 언급이 마태복음 16장 16~17절에 나타난다. 18절에는 예수께서 내리신 아람어 케파(수리아어로 게바), 곧 반석이라는 새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를 고대 그리스어로 소리 그대로 옮긴 후 다시 뜻을 풀이한 것이 페트로스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 ‘알게 하신’ 믿음의 반석 위에 신령한 교회를 예수께서 세워 가실 것이라는 주권적 언약 성취의 논리를 간과한 채 19절을 단편적으로 해석해 천국 열쇠를 예수께서 부여하셨다는 부분만을 주목하여 베드로를 지상 교회의 초대 교황으로 간주한다. 이에 근거하자면 현 교황 프란치스코 1세는 베드로의 266번째 후계자가 되는데, 그렇다면 바로 이어지는 23절의 문맥을 따라 (부활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했던 베드로를 넘어지게 하는 사단이라 이르셨으니) 교황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단의 후예가 된다 해야 할 것인가. 이는 성경을 하나의 주제와 구조로 이해하지 않고 파편적 인용으로 접근할 경우 얼마나 위험한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논리가 파생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가톨릭에서 초대 교황으로 숭앙하는 베드로이나 그는 성경에서 자신을 어떤 우두머리로도 자처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드로는 그리스도 은혜 가운데 불러내시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모든 성도를 일컬어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벧전 2:5)이라 명명한다. 4C 말 시리치오 교황 이후 보편적 아버지를 의미하는 파파(papa)의 용어 아래 수직적 계서(階序)를 강조해온 가톨릭과 달리 그리스도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 아래 수평적 화합을 이루는 신약의 성도는 ‘사도들 중 첫째인 베드로의 후계자’, ‘보편 교회의 최고 사제장’,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리스도의 대리’ 등으로 자처하는 교황 혹은 그 이하의 고해 사제를 결코 중보자(仲保者)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통의 메마른 광야를 나그네처럼 외롭게 걸어갈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리라(창 28:15)’ 언약하신 여호와, 그가 화목제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은혜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는 우리 언약 백성의 유일한 중보자로 인정되실 것이다.
베드로가 가졌던 어부라는 직업은 로마 당대에 생선이 비싼 축에 드는 먹거리이던 까닭에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거의 매일 출항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율법의 핵심인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에 다수 제자의 전직이기도 했던 어부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천대받고 있었다. 예수께서 보이신 만선(滿船)의 기적을 접하고 죄인임을 고백한 뒤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린 채 예수를 좇은(눅 5:11) 베드로의 삶은 우직하고 정열적인 대담함도 있었으나 주저함과 망설임의 동요 또한 빈번하였다.
영생을 가르치시며 만인구원을 배격하시자 무리가 실망해 떠날 때 거룩하신 당신이 아니면 뉘게 가겠느냐며 믿음의 반석다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고 아프게 통곡하기도(눅 22:62) 했었다. 바다 위를 걸어 당당히 예수께 향하다가도 풍랑이 두려워 빠져버린(마 14:30) 책망의 모습도 있었다. 뭇 대제사장 앞에 나사렛 예수의 이름만이 유일한 구원임을 밝히다가도 할례자들이 두려워 외식을 하는(갈 2:12) 위선을 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 번을 부인한 베드로의 모자람에도 예수께서는 어린 양에 대한 세 번의 당부로 변함없이 그를 신뢰하시고 사랑하셨다. 때로 우리 양 무리가 눈물 계곡에 머물지라도, 그릇된 길로 방황하며 두려워할지라도 저물 무렵 평안의 푸른 초장(草場)에 쉴 수 있는 이유, 참되고 선하신 목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도록 하심에 있을 것이다.
이재규(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