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4-05-16 23:0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열조시대의 생활과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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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zi Tablet, B.C 15)

29명의 부인을 둔 태조 왕건 이후 배다른 형제 및 조카와 혼인한 광종, 네 부인(3·4비는 자매 사이) 모두와 사촌지간이었던 경종의 모습은 동성불혼(同姓不婚)의 오늘날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난감할 따름이다. 소수의 특권 유지를 위한 근친혼이 다반사였던 골품제의 관행이 이어진 고려 초기, 34명에 달한 왕건의 자녀는 왕권 안정을 위한 ‘왕실 내 혼인’의 토양이었으며, 건국 백 년이 지난 현종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른 성씨와의 혼인이 성사된다. 다양한 출신의 호족들이 난립하던 후삼국 시대에 유력 호족과의 연대로 통일을 쟁취했으나, 새 왕조 창립 후 외척이 된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폐쇄적 집단처럼 왕실을 운영해야만 했던 시대적 상황을 살피지 않을 시에 역사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일부다처와 근친혼이 허용되었던 고대 근동의 풍속을 전제하더라도 삼촌 나홀의 손녀인 리브가와 결혼한 이삭, 삼촌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맞이한 야곱을 요즈음의 상식으로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이밖에도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는(창 25:32~33), 부부간 아이가 없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첩을 얻어주는(창 16:2~3), 무자할 시 종을 상속자로 삼는(창 15:2~3) 등 받아들이기에 껄끄러운 장면이 창세기에 등장한다. 그렇지만 인간사 기준의 비상식적 내용이라 하여 여호와께서 세우신 언약을 전적 주권으로 계승시켜 가시는 의미 분석의 흐름에 장애는 아닐 터이며, 오히려 고고학적 탐사와 토판 문서의 해독은 열조 시기의 역사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곧 구약 계시 속 초자연적 사건들을 문학적 창작으로 몰아갔던 비평가들이 상당 부분 후대의 허구로 파악한 당혹스러운 기사들이 당대 근동 지역의 실제 관행이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고대 근동 전역에서 주된 기록 매체로 통용된 토판은 건조한 토층에서 탁월한 보존력을 발휘했다. 히타이트와 이집트 사이의 균형추였던 미타니의 동쪽 끝 도시 누지, 후리족(Hurrians)이 다수를 이룬 이곳에서 주전 15~14세기의 것으로 판명된 2만여 점의 토판들이 발견되었다. 그 이전 아모리족의 풍습이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문서에서 장자 계승권이 양 몇 마리에 양도된 기록, 불임인 본처 대신 타 여인을 얻어 후사를 잇는 기록, 친자 없는 부모가 입양된 종을 상속자로 삼는 기록 등이 밝혀졌다. 최근 창세기와 누지 서판 간의 유사성으로 인정된 부분에 몇몇 반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브라함 외 족장 시대의 기사들이 후대 이스라엘의 관습이 아니라 대체로 주전 2천 년대 초엽 고대 근동의 생활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에는 큰 이견이 없다.

이외에 유프라테스강 중류의 마리, 터키 남부의 알랄라크 등에서도 창세기의 이해를 돕는 문서들이 출토되었으며, 한편 옛 소돔으로 언급되는 사해(死海) 남부도 주목할 만하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망스러운 존재를 일컫는 ‘소돔의 사과(Dead Sea Fruit)’. 탐스럽던 빛깔에 손을 대자 한 줌의 재로 사그라졌다던 저주의 열매처럼 이곳은 현재 불모의 땅이나, 과거 아브라함과 롯이 땅을 나누던 중기 청동기 시대에는 풍부한 물이 있어 농경에 유리한 옥토였음을,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창 13:10)’의 기록이 정확한 사실이었음을 고고학은 또한 증명한다. 이처럼 과거의 문서와 고고학적 발굴은 열조 시대의 역사적 배경 지식을 갖추도록 돕지만, 반대로 열조의 이야기가 고대 근동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라면 성경이 어떤 점에서 신적 계시의 차별성과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 까다로운 질문이 떠올려진다.

작금의 근동 지역은 과거의 잔해들이 수 세기 동안 쌓여 형성된 언덕, 곧 아랍어로 텔(tell)이라 불리는 단층학(斷層學)의 소재가 가득하다. 학자들은 고고학 발굴의 무한한 가능성을 자신하며 150여 년간 진행된 성과는 시작에 불과할 뿐임을 강변한다. 그러나 과학이 극에 달해 신의 실존을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해도, 고고학이 극에 달해 성경 기사의 수다한 사실성을 확보한다 해도 그 눈이 가리워진 자, 그 마음이 어두워진 자(사 44:18)는 자신의 우상을 빚을 뿐 결코 보고 깨닫지 못할 것임을 성경은 명시한다.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 것을 가르침처럼, 신약은 구약에 근거하며 구약은 신약으로 성취되는 성경 자증의 원리에서 벗어남은 믿음에서 벗어남의 시작이다. 근본적으로 성경의 권위는 어떤 인간 학문의 조력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계시 역사를 통해 오직 스스로 세우실 뿐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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