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5-05-07 20:2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바빌론 함락과 말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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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모티브를 제공한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은 허공 위에 바위 성이 둥실 떠 있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졌다. 산과 나무가 많던 고향 메디아를 그리워한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느부갓네살은 계단식 테라스에 엄청난 양의 흙을 쏟아 정원을 꾸미고 유프라테스의 물을 끌어올렸으니, 공중 정원(Hanging Garden)의 명칭은 층층의 푸른 초목이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린 듯한 불가사의에서 유래되었다. 전해지는 정원의 형태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재건된 지구라트를 연상하게 하는데, 잦은 범람에 대비해 천연 아스팔트로 방수 마감된 하단부 위에 석회를 이용한 모르타르 접합재로 견고히 올려진 성탑(聖塔)은 그 위용을 과시하며 바빌론으로 끌려온 포로들을 압도했을 것이다.

900헥타르에 달했던 거대한 바빌론 성은 길이 900미터, 폭 20미터의 포장된 중앙 도로를 따라 수많은 건물들이 정연히 배치되었으며, 해자로 보호된 둘레의 총 아홉 성문 가운데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에 14미터의 높이로 복원되어 있는 채유(彩釉) 벽돌의 색조가 인상적인 이슈타르의 문은 바빌론 시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왕도로 삼고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라 했던 느부갓네살의 자평은 나름의 근거를 갖는 것이었으나, 지존자를 모르던 교만은 다니엘의 예언대로 짐승처럼 풀을 뜯는 삶으로 징치되었으니, 이는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신 18:22)에 따른 사실이었다.

다니엘서가 주전 6세기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전통적 견해에 반대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포르피리우스는 놀라우리만치 정확히 성취된 예언들은 (해당 사건들의 발생 이후) 2세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에 무명의 유대인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 주장했다.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간주한 존 브라이트의 『이스라엘의 역사』 역시 종교적 박해기에 저항 의식을 고취하고자 묘사된 서술로 예언 기사를 이해하고 있다.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이 기적을 모두 잘라낸 46쪽짜리 예수 이야기를 편집했듯이, 성경의 초역사적 권위를 인간의 합리로 재단하고자 하는 이들은 성경 기사를 계시된 문자 그대로 따르는 믿음이란 고리타분한 근본주의라며 조소의 시선을 보낸다.

이사야의 예언(사 39:7)대로 바빌론 왕궁의 환관으로 교육받게 된 유다 자손 다니엘의 삶은 끌어온 각국의 인재들을 제국의 신민으로 양성하려는 느부갓네살의 야심에 이끌리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의 꿈에서 제국들의 예정된 흥망을 알리신 여호와께서는 또한 벨사살의 잔치에서 바빌로니아의 파국을 예고하셨다. 한동안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으로 나보니두스(555~ 539)가 인정될 뿐 벨사살에 대한 다니엘서의 언급은 무시되는 분위기였다. 비평가들은 벨사살이 역사기록에 실존하지 않음을 빌미로 다니엘서 전체의 신뢰성을 공격하였으나, 1854년 이라크 남부의 고고학적 발견은 나보니두스의 맏아들 벨사살의 이름을 명확히 드러내었다. 추가적인 발굴들은 북방 메디아-페르시아 연합군을 막고자 아버지가 출정한 까닭에 왕자가 공동 섭정으로 바빌론을 맡았던 사실을 밝혔으며, 따라서 다니엘을 세 번째 치리자로 삼았다는 성경 기록의 정확성이 자연 입증되었던 것이다.

일찍이 모세 시대에 대적을 보수하고 고토로 돌아오게 하리라 언약하신 살아있는 말씀(신 30:1~10, 32:40~43)의 역사는 70년 포로 기한의 불가피성을 가르친 예레미야서를 통한 다니엘의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였다. 풀무불과 사자 굴에서도 여호와를 향한 소망에서 떠나지 않던 충실한 종이었으나, 오히려 그는 다니엘서 9장에서 보듯 ‘우리’가 여호와의 법에서 떠났었노라 그 죄상을 낱낱이 고백한다.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여호와께 수없이 ‘우리’의 죄를 자복하던 연로한 선지자의 심중은 백성의 회복을 간구하는 긍휼로 타올랐을 것이며, 이는 모두 잠들어버린 ‘우리’를 위해 겟세마네의 피땀으로 기도하시던 그리스도 예수의 모형이었다. 포로된 광야의 삶 때때로 ‘우리’를 초라히 낮추어 시험하심은 세속의 떡이 아닌 오직 말씀의 힘만이 교회를 세우시는 능력임을 생생히 깨달아 배우도록 하심이리라.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이재규 집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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