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09-08-28 00:0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죽은 시인의 사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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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용산 재개발 당시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위해 투쟁하던 철거민들이 경찰들의 과잉진압에 의해 죽음을 당했으나 정부는 이를 모두 철거민의 탓으로 돌린 채 외면했다. 이상하다. 이에 촛불을 든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폭력으로 진압 당했다. 이상하다.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경제 및 금융 위기와 관련한 100여 편의 글을 올린 인터넷 논객이 허위 사실 유포로 체포되었다. 이상하다. <100분 토론>이 낳은 똑똑하고 명민한 달변가 ‘고대녀’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상하다. 재벌기업과 메이저 신문사의 방송 경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이,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로 통과되었다. 돌겠다. 그러는 와중에 진보진영의 큰 별이었던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자유와 민주에 큰 힘을 실어주던 어른들이 석 달도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대한민국을 떠난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고 해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한 사건도, 그 해괴함에 일조한다.
진중권 겸임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두고 총장실에 들어가 항의를 한 학생들에게 중앙대가 중징계를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총장실 내부에 학생들이 부착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 색종이가 총장을 매우 언짢게 만들어 징계철회는 사실상 어렵다’고 했는데, 학생 징계라는 엄중한 사안의 기준이 고작 총장님의 기분이라니 참으로 기함할 노릇이다. 권력의 의자에 앉으면 다들 이런 식으로 안하무인이 되는 건가? 학생들이 진교수의 재임용을 원하는데, 학교 측이 왜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그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말, 이상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다시금 보았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 학기가 개강하며 이 영화는 시작된다. 전통과 규율을 중시하는 이곳에, 독특한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키팅이라는 선생이 있다. 그는 문학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시(詩)를 분석하고 측정해 완벽한 시를 쓰도록 하는 책의 서문을 찢으라 하고, 보다 다양한 시각을 견지하라며 교탁 위에 올라서기를 권유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항구를 구경할 선원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신이다’등의 문구가 적힌 쪽지를 읽고 축구공을 차게 한다던가, 소극적인 학생을 불러내 그로 하여금 내면에 잠재된 지적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게 하여 한편의 시를 완성케 하는 등 자유롭고, 낭만적인 수업 방식을 고수했다. 학교 측은 그 비전통적이고 정제되지 못한 방법으로 교육하는 키팅 선생을 거슬려했으나 그의 반 학생들은 그를 애제자처럼 따랐다. 제자들 중에는, 엄격한 군인 아버지 밑에서 명문대와 의사라는 목표를 강요받으며 숨을 죽이고 지내온 학생 닐이 있었다. 닐은 그토록 꿈꾸었던 연극무대에 주인공으로 서게 되지만, 그의 연극을 관람한 아버지는 냉담하게 말한다. 너를 자퇴시키고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시킬 것이라고. 아버지에겐 닐의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다. 네가 얼마나 엄청난 기회를 가진 줄 아냐며 아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닐은 아버지의 권총으로 자살한다. 학교 측은 닐의 서클이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들을 모아 추궁하고, 그 책임을 키팅 선생에게 전가해 학교에서 그를 쫓아낸다. (이상하기 그지 없다.)
나는 그 학교에서 그리고 닐의 아버지에게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모습을 보았다. 학교는 키팅 선생을 두둔하려는 학생들을 퇴학시키겠다며 협박하고, 끝내는 키팅 선생을 자신들의 울타리 밖으로 추방했다. 닐의 아버지는 쌍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말은 명령이었고, 그에 따른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 억압, 협박, 불통, 독재, 폭력, 권력남용. 앞서 언급했던 그 이상한 일들을, 이렇듯 영화 속 키워드로 띄워 끼워 맞추면 딱딱 들어맞는다.
나는 하나님이, 말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상식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물론 비상식과 불합리 속에서도 충분히 하나님을 배울 수는 있지만 이제 더는 못하겠다. 지겹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겹기 짝이 없는 싸움이,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끔찍하다. 하나님이 좀 관대하셨으면 좋겠다. 천국백성에게만 관대하지 말고, 악한 왕에게 시달리는 가여운 우리 민초들에게도 말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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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절망 앞에서 더 큰 절망을 연주
도가니-열기를 걷어내고 차가운 호흡으로 지켜봐야 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