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4-04-27 14:5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캡틴 아메리카

가장 담백한 선과 악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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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함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개인의 명분과 만족을 위해 행해지거나 혹은 한 시대의 규범이거나 집단에 의해 독려되어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 행하는 선을, 선의 순수성을 믿지 않는다. 게다가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작금은, 아무런 자각이나 의도 없이 선행을 베풀기가 쉽지 않은 삭막한 시대이기도 하다. 사회가 고도화되어 갈수록 선과 선행의 개념들은 점점 따분하다는 눈총을 받으며 멀어지는 것이 당연한 사실일는지도 모르겠다.
<캡틴 아메리카>에 등장하는 ‘착한 놈’들은 전쟁이나 대량 살상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다. 넘치는 이타심을 주체 못해 선행을 남발하는 <킥 애스>의 녀석들과는 조금 다른 타입이라 볼 수 있겠다. 최소한 무고한 사람들에게 파편이 튀지 않도록, 평소와 같은 일상을 영위하던 평범한 시민들이 다치지 않게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한다.
이 영화에서 상정한 선과 악의 개념은 (한물 간) 파시즘과 자유 진영의 대결 구도이기도 하다. 공포와 억압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과 그것을 막으려는 선. 여기서 선은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앞서 실행하는 게 아니라, 악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해 해결사 노릇을 한다.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선이라는 것은 먼저 스스로 생겨날 수도 없을 뿐더러 (상대계에 사는 인간은 선이 놓여 있어도 선이라고 인지할 수 없을 테니) 같은 이유로 악행 없는 선행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쁜 놈’이 없는 세상이라면 쉴드나 어벤져스의 존재 이유는 기껏 ‘경비병’ 정도에 불과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선함이란 무엇일까. 역시, 절대적 존재를 믿는 우리에게 선함은, 도덕률을 뛰어넘는 더 커다란 어떤 개념이다. 즉, 절대자인 하나님의 뜻, 의지, 계획들이 거스름 없이 이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부당함이 우리 입장에서는 악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궁극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커다란 목적에 부합하여 완전하고 아름다운  정반합을 이루어낸다. 그렇기에, 하찮고 무의미한 시련은 없다.
그러나 위험한 지점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기 위한 과정이라 치환했을 때 발생하는 합리화의 오류에 있다. 어느 책에선가, ‘가장 마지막에 자신을 속이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구절을 보았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무수한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지체를 상처 입히거나 교회를 흔드는- 일이라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는 대전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악한 짓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 최후의 목적에 걸맞다고 해서 과정까지 선량하다 믿는 건 무지함이 빚어내는 극악무도한 뻔뻔함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영웅진들이 하는 선한 행위도, ‘피해’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다. 간단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놈=악당, 남에게 피해를 주는 짓=악한짓. 고로 그걸 막는 놈, 막는 짓=착한놈, 착한짓’이니까. 아마 그것은 선과 악에 대한 가장 담백하고 알맞은 정의가 아닐까 한다.
여하간 <캡틴 아메리카>는 마블 스튜디오의 찬란한 진화에 정점을 찍는 작품이었다. 아이언맨이 슈트를 번쩍이고, 토르가 망치를 휘두르고, 나타샤가 날렵한 몸매로 발차기를 선보일 때에도 구석에 찌그러져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던 캡틴 아메리카가 왜 어벤져스에 필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궁극의 한 방이기도 했다, 왜 그가 100세에 가까운 노인의 나이로 고루하고 답답하게 정의를 지켜내려고 하는지, 왜 캡틴 아메리카를 구식 캐릭터로 상정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그 자체로 (다소 어이없지만) 미국의 정신이며 나아가 휴머니즘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마블은 그것이 선(善)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음을, 그리하여 오늘 날 우리가 잊고 사는 무언가를 건드려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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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기원
<배틀로얄>에서 읽은 두 개의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