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09-05-08 19:2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굿 윌 헌팅

이성을 바로잡는 '사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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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공대의 수학 강의 시간이다. 수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수훈상을 수상한 교수가 의기양양하게 공표한다. 지금부터 이 문제를 푸는 학생은 자신의 수제자가 될 것이고, 명예와 부를 거머쥐게 되며, 그 성과가 기록되고 MIT 테크지에 이름이 오를 것이라고. 수학 문제는 강의실 복도의 칠판에 게시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 몇 분 만에, 한 천재 소년에 의해 간단히 해답을 얻는다.

그 천재 소년의 이름은 윌. 그는 MIT대학의 청소부다. 무수한 폭력 전과 기록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한계를 측정할 수 없는 지적 능력까지 겸비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그에게 있어 수학문제란, 시시한 시간 때우기 장난감과도 같다. 그 수학문제가 세계에서 단 몇 명만이 풀 수 있는 수준의 것이어도 말이다. 그의 지적 능력은 학문을 초월한다. 응용화학, 물리, 역사, 정치, 법률, 문학, 예술… 날카롭고 예리한 눈으로 인간의 지성을 분석하고 그들이 이룩한 역사를 통찰한다.

수학 문제를 푼 직후, 윌은 폭력 사건에 휘말려 법정에 서게 된다. 교수는 윌을 석방해주는 대신 두 개의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는 자신과 함께 매일 매일 수학 문제를 풀 것, 하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 윌은 두 번째 조건을 탐탁찮아 하지만 감옥에 있는 것 보단 낫지 않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 교수들이 윌의 치료를 맡게 되지만,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윌의 조롱과 모욕에 치를 떨며 상담실을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이가 인생의 스승, 바로 숀이다.

숀은, 윌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이나 인류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천재성보다도 그가 가진 내면의 아픔에 주력한다. 입양 되었다가 파양 당하고, 양아버지에게 갖은 학대를 당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어야 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윌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고, 이해한다. 이는, 윌의 기능적인 면을 더욱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수학교수와 대비되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다. 숀은 말한다. ‘윌은 사람들이 자길 떠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떠나게 만들고 있다’고. 그가 자신의 두뇌로 연구를 하고 국가에 공헌을 하는 게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인가를 알고, 그러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여 그는 윌에게, 수차례 반복해서 말한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 라고. 알고 있으니 그만하라던 윌은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한 윌과 숀의 포옹을, 카메라는 따듯한 시선으로 비춘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들춰보면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숀같은 멋진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다행히 우리에겐 근본적인 치료제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의 분출이나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그의 위업을 통해, 우리가 겪는 일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하잘 것 없는 것인지를 앎으로 또 다른 방식의 위로를 얻는다. 고개 들어 그가 해나가시는 일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자잘하고 별 것 아닌 것에 목을 맸는지, 슬퍼했는지, 고통스러워했는가에 일순 허탈해진다. 순간의 아픔은 끔찍하지만, 그가 진행하시는 역사에 비한다면 하나의 작은 점일 뿐이라는 것을 알 때 얼마나 숙연하고 또 편안해지는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더욱 똑똑해진다. 그 현명함으로 멋있게 사랑하고, 사랑의 충만한 에너지로 말씀을 공부하여, 풍요한 삶을 누리자. 윌의 상처를 가진 우리는 숀보다 더 성숙하고 유연하게 세상의 아픔을 해석할 수 있으니.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아 (대구동산교회 청년부)
이메일 : jay_dreaming@naver.com

멈추지 않는다. 사라질 뿐
내 욕망은 정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