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5-03-01 19: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뿐이라면

영화 <우주전쟁>


‘큰돈’이라는 건 사람마다 정의하는 액수가 천차만별이라 치더라도, 생활비에서 쪼개고 쪼개 모아놓은 쌈짓돈들은 어지간한 큰돈 보다 그 존재감이 더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돈은, 정말이지 무섭다. 욕망을 충족시켜주어서 무섭고 더 큰 욕망을 불러들이기에 무섭다.

돈을 통해 우리는 삶의 환경을 이루는 물질적인 요소들뿐 아니라 재미나 즐거움, 경험 같은 비물질적인 요소들 또한 살 수 있다. 돈이 없어서 걱정이지 돈이 있어서 걱정인 사람은 보지 못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건, 돈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한 할리우드 배우의 말에도 일부분 공감한다. (일부분이라고 한 까닭은, 이미 행복한 사람에게 돈은 더 행복하거나 덜 행복하게 할 능력이 없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권력이 되어버린 그리하여 황금만능주의의 천박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금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느끼는 바가 많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으로 자존감을 세우며 어떤 것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돈으로 무력화시키는 모습들을 보며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의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지, 힐링(그 신물 나도록 듣는)이란 걸 좀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오지랖 넓게 걱정을 해본다.

방 보증금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었다. 남들에겐 푼돈일지 몰라도 내게는 빚(?)까지 붙은 전 재산이었다. 급한 성미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숙함으로 인해 위기가 찾아왔다. 한순간에 그 보증금을 날리게 될지도 모른다 싶어지자 핏기가 가시며 심장이 쿵쿵댔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동네 시장을 슬슬 돌아다녔다. 그때 문득,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이 사무치게 부러워졌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도, 만원 안짝의 싼 피자를 사 가는 청년도, 노동에 지친 허름한 차림으로 은행에 들어가는 아저씨도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한 푼도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고.
오래전 보았던 영화 <우주전쟁>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급작스런 외계인의 출연으로 패닉이된 사람들. 서로 살려고 도망치는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늘 그런 자문을 했다.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품에 안고 달릴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라면, 홀가분하지 않을까.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뿐이라면 마음 가볍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뜬금없지만 하나님께 감사한다. 부요했던 적은 없었지만 필요한 때엔 적절히 채워주셨고 배를 곯게 하지 않으셨다. 돈의 무게를 경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내가 좇는 가치가, 물질이 아닌 것에 있게 하셨다. 돈 그 자체의 의미보다도 그것이 교회를 향해 쓰일 때의 참 의미를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세상을 향한 나의 관점을 돈이 아닌 하나님으로 만들어주셨다.

주변의 많은 크리스천들을 본다. 말로는 하나님이 어떻고 기독교적 가치가 어떻고 하지만 그들의 신앙과 물질은 물과 기름처럼 또렷이 분리된 경우가 많았다. 가치 기준은 세속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서 결론은 하나님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나의 중심은 늘 불행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자신하는 가치들을 당당히 팔에 안을 수 있는 건 신앙 덕분이다. 신앙이 없는 나, 하나님을 모르는 나는 세파에 얻어맞아 얼마나 휘청거리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겁이 난다. 

하루라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까. 돈이 집채만큼 쌓여있은들 솔로몬처럼 ‘헛되다’ 느끼지 않으며 살뜰히 써댈 수 있을까. 그게 내 생의 마지막 하루에, 뜻깊은 일이 될까. 하나님의 자녀인 덕에 이런 행복을 누릴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립고 익숙한 집의 거실에 모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성경의 인물들, 영원한 세계, 그곳에서 만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따듯한 손을 맞잡고 있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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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정공법
인간과 신의 모호한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