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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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25 21:2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뉴스리뷰>-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생각 그리고 교회 재정개혁의 당위성


성도 수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생계형 이중직 목회자 늘어나
제도적으로 목회자 이중직을 막는 것은 현실에도 부합되지 않는 일 근본적으로 재정 개혁을 비롯한 교회 개혁을 통해서만 문제 해결 가능

얼마 전 기독교 계열의 일간지에는 「목회자 이중직 지금 교회는」 이런 제목의 글을 두 번에 걸쳐 연재하였다. 목회자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한 기존 교계의 생각과 새로운 목회환경, 그리고 미국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각 교단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강조한 기사였다.
이 기사는 먼저 신학교 졸업자 수와 교회 수는 줄지 않는데 성도들은 줄고 있고 미자립 교회가 80%를 넘는다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택시 운전을 하고 있거나 아파트 경비를 하는 등 생계형 이중직 목회자들을 소개하고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교단의 70%가량이 아직까지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불법 목회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 기사는 미국의 남침례교나 북미장로교 등 미국 교단들의 목회자 이중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면서 우리 교단들도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할 때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에서의 목회자 이중직 허용은 단지 생계형 이중직 목회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자비량 목회의 실현이라든지 이중직을 통한 선교활동의 필요성 등에 기인한다면서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기존 교단들이 목회자 이중직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목회자가 목회 이외의 일에 뛰어들면서 목회자들의 헌신도나 전문성이 저하될 수 있고 또 성도들과 교회에 대한 관심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이 기사가 언급하고 있듯이 이러한 기존의 입장들은 생계형 이중직 목회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과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자 그럼 목회자의 이중직을 어떻게 보는 것이 타당할까? 이 문제는 교회 내 목회자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는다면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기존 교단에서 목회자에 대한 생각은 교회를 지도하고 이끌어 가는 이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물론 교회의 행정이나 재정 전반을 책임지는 자로 생각하고 있고 사실상 교단 헌법이나 교회 정관들은 이러한 인식 아래 목회자에게 무한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목회자 1인 중심 체제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며 목회자 역시 여느 성도와 마찬가지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한 지체일 따름이다. 그리고 모든 지체는 성령께서 주신 저마다의 은사 따라 봉사하게 되는데 목회자에게 주신 은사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에 대한 인식을 가진다면 목회자가 이중직을 가지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회자는 다른 지체와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이중직이 필요하다면 이중직을 가지면 될 것이고, 만일 배우는 성도들이 목회자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원하는 마음으로 후원한다면 그때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연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목회자의 사례가 교회 연보의 사용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인 만큼 목회자 이중직과 교회 연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 성도들은 연보를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이라는 기복적인 생각을 하고 있거나 꼭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으로 인식하고 있는 등 연보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또 연보를 한 후에는 그 사용에 대해서는 목회자나 당회에 전권을 부여하여 교회의 부정과 부패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연보는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낮고 가난한 자로 오셔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을 함께 연합하여 냄으로써 어린 자들을 보살펴 신앙적으로 부요하게 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보는 누구의 강요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마음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성도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연보를 행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재정 운영방식으로는 이러한 성경적 연보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 결국, 성경적인 연보 생활이 보장되려면 현재 한국교회의 재정운영은 전반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먼저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연보 생활을 하자면 연보가 어떻게 쓰일지 그 목적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에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연보만을 거두어 사용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그 연보의 사용 역시 목회자나 당회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 목적에 부합하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봉사자들에게 직접 연보를 내고 그들로부터 연보의 사용에 대한 결과를 보고받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이처럼 교회의 재정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목회자가 받는 사례 역시 성도들이 목회자를 후원하고 사례하고자 하는 만큼 거두고 목회자에게 그만큼을 사례하되 그것으로 목회자의 생계가 충족된다면 목회자는 그러한 성도들의 마음에 따라 가르치는 일에만 충심을 다하면 될 것이고 목회자의 생계를 유지함에 부족하다면 자연히 목회자는 하나님의 사명으로 가르치는 일에 충실하되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이중직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한국 교회는 목회자 사례를 정해 놓고 그를 모으기 위해 성도들에게 자원할 마음도 없는데 형식은 권면이나 실질은 강요인 방식으로 연보를 모아 사례를 충족하고, 교단들은 목회자는 목회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중직을 가지는 것 자체를 불법시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목회자 편향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목회자 편향주의가 결국은 성도들을 교회에서 떠나게 하고 교회의 위기를 맞이하게 한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직시하기 바란다.

믿음은 있으나 교회를 나오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 오늘, 이들은 목회자 중심의 교회, 불투명한 재정운영으로 일관하는 교회의 현실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결국은 목회자들의 이러한 자기 편향적 제도들이 성도들을 떠나게 하고 있고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중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중직을 제도적으로 막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매우 취약한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 한국교회의 개혁은 어쩌면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사명이 아닐까.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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