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5-03-23 21:0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하늘의 길, 성인의 길


信言不美, 美言不信;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하지 않다.
신언불미, 미언불신
善者不辨, 辨者不善; 선한 사람은 따지지 않고 따지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
선자불변, 변자불선
知者不博, 博者不知。 아는 사람은 떠벌이지 않고 떠벌이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지자불박, 박자부지
聖人不積, 성인은 쌓아두는 것이 없으니,
성인부적
旣以爲人己兪有, 이미 다른 사람을 위하기에 자신은 더더욱 가지게 되며
기이위인기유유
旣以爲人己兪多。 이미 다른 사람을 위하기에 자신은 더욱 많게 된다.
기이위인기유다
天之道 利而不害;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되 해를 끼치지 않으며,
천지도 이이불해
聖人之道 爲而不爭。 성인의 길은 남을 위하고 다투지 아니한다.
성인지도 위이부쟁
(노자 81장)






본문은 노자의 마지막 장이다. 노자답게 마지막 장도 도와 허의 관점에서 늘 해오던 대로 말미를 장식하고 있다.

믿음이 담겨 있는 말은 번지르르하지 않다. 그럴듯하고 번지르르한 말은 미더움이 없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투박하고 순박하게 말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자기 안에 신실함이 없는 사람은 번지르르하게 꾸며대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 본디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이 선하려니 생각하기에 자신의 일이든 다른 사람의 일이든 굳이 따지려 들지 않는다. 따지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치고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별로 없다.

지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깨우침을 얻어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복잡하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잡다하게 말하게 되고 번잡하게 행동하기 쉽다.

성인은 믿음이라든가 선이라든가 앎이라든가 하는 따위를 애당초 자신에게 쌓아두지를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믿음이든 선이든 앎이든 벌써 다른 사람에게 다 주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미더움과 선함과 알고 있는 것들을 이미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써버렸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자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

하늘이 행하는 방식은 늘 만물을 이롭게 할 뿐 해롭게 하지는 않는다. 성인의 길도 모든 사람을 위하기만 할 뿐 그들과 다투지 않는다.

모든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필연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무언가 자신의 삶의 쌓음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인생은 무엇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고 무슨 쌓음을 쌓아야 할까. 

노자에서는 신실함과 선함과 앎을 지적하고 있다. 그 내용은 좀 역설적이다. 모든 인생은 자신이 신실하다고 꾸며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꾸며대는 자는 신실한 자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자신이 선하다고 해서 따지는 자 역시 선한 자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자신이 좀 안다고 번쇄하게 따지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번쇄하게 떠드는 자는 무얼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인들이여! 우리도 우리의 살아감에서 우리에게 신실함은 무엇이고 선함은 무엇이고 앎은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신실함이, 선함이, 앎이 있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묻기로 하자. 만일에 우리가 신실하고 선하고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어떤 기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 분명한 것은 기독인은 떠벌이거나 분별하거나 번쇄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신실하고 선하고 앎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귀중한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부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리로다.”(로마서11:33)
바울은 모든 기독인의 신실함과 선함과 앎의 해답이 깊고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부함에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기준도 바울 사도의 통찰을 통해서 찾아진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세세에 영광이 있을지어다.”(롬11:36)

대한의 기독인들이여!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부함 안에서 살아가도록 노력하자. 우리의 신실함이나 선함 역시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나오고 그분을 통해서만 그리고 다시 그분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 기독인들이 대한민국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대한민국을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참 기독인이라면 우리는 예수와 더불어 열심히 살아가고 근면하게 일한 후에 마침내 주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셨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박사(교육학박사), 백석대 외래교수

배움의 길을 어떻게 가야할까
병통만을 병통으로 여길 수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