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10-05 21:1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백성이 풍성한 덕을 느낄 수 있어야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증자와 신종추원 민덕귀후의.

“마침(장례)을 삼가 신중하게 하고 근원(조상)을 추모하게 되면 백성들의 덕스러움이 후덕한 데로 돌아갈 것이다.”


증자는 이름이 증참(曾參, 기원전 505-436)이고 공자의 제자이다. 증자는 공자의 최고의 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 알려진 안연(顔淵, 기원전 521-481)이 죽은 후에 스승의 법통을 이은  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증자가 공자 이후의 유학 사상을 정립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더라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증자의 말이나 사상은 논어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증자는 “吾日三省吾身”(나는 날마다 세 번 내 몸을 살핀다)을 말하면서 자신의 반성하며 조심하는 생활자세를 보여주었다. 반성의 내용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충실히 하고자 하는 것, 친구와의 관계에서 의리를 지켜가겠다는 것, 그리고 배운 도를 실천하겠다는 것 등이었다. 그가 병에 걸려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을 때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손과 발을 보게 한 후에 군자의 가는 길은 손이 험해지고 발이 험해지도록 바른 배움과 효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증자는 도를 넓고 깊게 터득하려 했다기보다는 도의 실천을 더욱 중시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신종추원은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든 인생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모님들의 죽음이다. 이 죽음에 후손들은 삼가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愼終). 유학에서 죽음이란 기가 흩어짐이다. 백(魄, 몸)은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가고 혼(魂, 넋 또는 정신)은 영이 되어 하늘로 간다. 부모님의 존재는 이렇게 우주 어딘가에서 계속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제사는 이러한 땅과 하늘로 흩어져 있는 기를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향을 피우는 것은 혼을 부르는 것이었고 땅에 술을 붓는 것을 백을 부르는 것이었다. 제사하고 있는 지금 이곳은 살아 있는 가문의 모든 후손들이 제사를 통해 함께 모여 있고, 그들의 직계 4대 조상까지는 친히 제사하고 그 이상의 시조는 시위에 올려 제사함으로써 모든 조상이 함께하고 있는 셈이기에 결국 그 가문의 모든 구성원이 모여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追遠).
본문은 통치하는 자가 몸소 그 자신의 부모와 조상을 신종추원으로 모시게 될 때 그 나라의 백성들이 덕을 풍성하게 지니게 될 것을 강조한 것이다. 통치가 나라를 부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 자신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근본적인 도리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증자가 구태여 돌아간다(歸)고 한 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그들의 행동을 백방으로 해 나가다가도 그 모든 행동의 귀결은 덕으로 끝마쳐져야 함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모든 백성이 정말로 모든 행위의 결말을 후덕한 덕의 실천으로 맺어간다면 그 나라가 평화로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대학에서 말하고 있는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군자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平天下, 평천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어떠한 풍성함을 보여야 할까.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 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리고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가 죄인으로 되어 있을 때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세상의 처음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랑도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것임을 밝혀 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이 처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역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장이 집안에서 이 시작을 잊지 않고 존경하여 실천하고, 그리스도인 선생님이 학교에서 먼저 이 시작을 잊지 않고 실천하며, 그리스도인 사장님, 부장님이 이 시작을 잊지 않고 존경하여 실천하고, 교회에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몸소 이 처음의 사랑을 잊지 않고 실천하자. 그리고 내가 먼저 처음의 사랑을 잊지 말고 실천하자. 그럴 때 주변의 모든 사람이 평안함 가운데 풍성한 믿음의 열매들을 맺으며 살아갈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무조건적 용서’라는 허구
정신의 구조: 신의 존재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