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6-12-10 13:3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아야…


子曰: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信於言
  자왈:군자식무구포 거무구안 민어사이신어언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취유도이정언 가위호학야이




논어 제일 장 「학이」의 내용이다. 그 번역은 이렇다.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밥을 먹을 때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할 때 평안함을 찾지 않으며 일마다 명민하게 하고 말에 미더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도가 있는 사람(곳)으로 나아가서 바르게 한다면 (그때야 그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한 사람이다. 그는 열 고을에 공자 자신과 같은 충신은 필히 있을 것이지만 자기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그만큼 공자는 배우기를 즐겨한 사람이다.
군자도 밥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배부르게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포’(飽)는 지나치게 배부르게 먹는 것이다.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적당하게 먹어야 한다. 먹는 문제는 오늘날에는 재산의 문제와 연결된다. 군자는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정도로만 재산을 모으고 사용해야 한다. 지나치게 재산을 모으거나 탐하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살고 있는 곳도 비를 피할 정도나 추위를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곳이어야 한다. 결코 넓고 편한 곳에서 안일과 게으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군자는 자신이 관여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빠르게 그 일에 대처해야 한다. 나라의 변고나 사회의 변고나 이웃의 변고에 군자는 빠른 판단과 대처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는 신뢰할만한 것이 담겨 있어야 한다. 약삭빠르게 빠져 나가는 말이거나 피상적인 말이어서는 곤란하다. 군자는 믿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자신의 책무로 여겨 민첩하게 행동하면서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군자라면 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군자가 시정잡배를 만나서 초라한 모의를 하거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거나 원칙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늘 도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 도를 지닌 사람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공자가 호학자로서 인정하고 칭찬한 인물의 자신의 제자 안연이다. 어느 날 계강자가 공자에게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했느냐고 묻자 공자는 서슴없이 안연이라고 답하였다(논어, 선진). 안연은 비루한 거리에서 초라한 밥을 먹고 살았지만 그렇게 극빈한 삶의 조건 속에서도 도를 즐겼고 배우기를 즐거워 하였다. 안연이 죽자 공자는 하늘이 자신을 망하게 하였다고 비통해 하였다. 기실 공자 문인 중에 호학자는 공자 자신과 안연 두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유학의 발전에 있어서 토대가 된 인물들이었다.

“식무거포, 거무구안, 민어사이신어언”을 능가하는 삶은 바울 사도의 생활에서 찾아질 수 있다. 그는 배고픔과 배부름, 풍부와 가난 모두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배움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 안에서 그 일체의 일에 대처할 수 있는 비법을 터득하였다.(빌 4:11∼13)

바울의 배고픔과 배부름은 그 의미를 확장하면 기쁠 때와 슬플 때로 이해될 수 있고, 감옥에 갇혔을 때와 거리에서 말씀을 선포할 때로 이해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때에는 하늘나라를 가슴에 품었고,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릴 때에는 인생으로서의 죽음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다양한 삶의 층들이 얽히고 쌓여서 마침내 바울의 삶은 지나간 것은 잊어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순교의 삶으로 승화될 수 있었다.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칼뱅의 예정론을 핑계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에 자기 자신의 죄는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것이 모두 용서받았다고 하면서 서슴지 않고 죄를 저지르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예정(작정하심)을 따라 자신의 영생 얻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처럼 날마다 자신을 죽이면서 오직 앞에 놓여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현실의 생활 속에서도 지나친 배부름이나 안일을 구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하나님과 형제의 일에 민첩하게 대응하면서 말씀에 표준을 두고 자신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리종연 목사 (서울진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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