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8-04-12 19: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증험하는 삶


子曰 夏禮 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 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자왈 하례 오능언지 기부족지야 은례 오능언지 송부족징야 문헌부족고야

足則吾能徵之矣
족즉오능징지의.

子曰 禘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자왈 체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

或問 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혹문 체지설 자왈 부지야 지기서자지어천하야 기여시저사호 지기장.




논어 3장 위정의 연속이다.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하나라의 예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가 있지만, (하의 후손인) 기나라가 증명을 해 주지 않고, 은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지만 (그 후손인) 송나라는 증명해 주지 않는다.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만약에 문헌이) 충분하다면 나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체 제사(Great Sacrifice)를 지낼 때 강신주를 따르는 일 이후부터는 보고 싶지가 않다.”
어떤 사람이 체 제사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대하여 이것을 보는 것처럼 할 것이다. (공자가) 자신의 손을 가리켰다.”

한 사람의 스승으로서 공자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라의 예나 은나라의 예는 문헌도 있고 해서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문헌이 부족하여 증험할 수 없는 경우는 분명히 모른다고 공자는 인정한다.
‘체’는 제사다. 왕이 드리는 큰 제사인데 왕은 시조의 사당을 세워두고 있고 그 시조를 제사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시조의 한 사람으로서 체 제사에서 배향을 하는 것이다. 주나라의 성왕(成王)은 노나라의 시조인 주공(周公)이 주나라 왕가에 큰 공로가 있다고 인정하여 노나라에서도 체 제사가 시행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체 제사가 예에 맞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공자가 이를 비판한 것이었다. 공자가 체 제사 과정 중에 강신주(降神酒)를 붓는 절차 이후로는 그 제사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은 강신주를 붓기까지만 예가 지켜지고 그 후로는 전혀 예에 맞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공자가 보기에 제사는 효와 공경의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왕이 아니면 체 제사를 지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공자 당시에 노나라에는 왕의 자격이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노나라에서 체 제사가 진행된 것이다. 이 사태를 보고 어떤 이가 공자에게 체 제사에 대해 묻자 공자는 모른다는 한마디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체 제사에 대해서 바르게 아는 사람이라면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천하를 바르게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을 정리하면 공자는 역시 사람이란 마음으로 인하고 밖으로는 예로써 모든 일을 대하고 처리하는 것을 중시하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그는 어떤 사태를 설명할 때에 감정에 느끼는 대로 또는 즉흥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하여 증거할 수 있는 자료나 증험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예의 사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는 모른다는 표현을 써서 적당하게 회피하는 형식으로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오늘날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말씀에 대해서나 어떤 사회적인 사태 또는 타인의 일들에 대해서 자신의 체험 수준에서 즉흥적으로 증거 없이 말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아니면 오래전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근거로 어떤 사태든지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전도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선한 양심으로 선하고 타당한 증거들을 모아야 한다. 그런 방향에서 늘 성경도 읽고 묵상하며 생활 속에 실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된 삶을 통해서만 성경의 말씀에서 벗어난 사태나 잘못된 사태에 대하여 증거를 찾고 모르는 부분은 넌지시 넘어가면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할 수 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보라고 제안하신다.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고 경쟁을 하자 어린아이를 세워서 겸손하기를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제안들은 형식이 아니라 생활이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하늘나라의 바른 길과 하늘나라를 향한 바른 삶을 실천하시며 보여주신다. 대한의 그리스도인들이여!! 이 황량하고 메마른 사회 속에서 사랑이 담긴 선한 생을 증험해 가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을 살아 보면 어떻겠는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니체식 행복추구의 불행: 기억과 망각 사이의 방황!
바탕이 먼저, 꾸밈은 나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