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8-07-03 21: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기준에 맞는 전통을 좇아 살아야


子貢欲去告朔之餼羊
자공욕거곡삭지희양.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왈 사양 이애기양 아애기례.
논어 팔일장의 계속이다.
“자공은 곡삭의 희생 제물(양으로 제사하는 것)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사(자공)야 너는 양(제물)을 아끼려고 하는데 나는 그 예를 아낀다.’”

자공은 곡삭의 희생을 없애려 하였다. 곡삭(告朔)은 옛날에 천자가 매년 계동(季冬, 음력 12월)에 제후들에게 다음 해의 월삭(달력)을 반포하는 관습이었다. 제후들은 그것을 조묘(祖廟 사당)에 보관했다가 월말이 되면 희생(한 마리 양)으로 조묘에 고하고 허락을 받아 (국사나 제사 등을) 시행하였다. 노나라에서는 문공 때부터 고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제후인 노나라의 문공이 왕으로부터 달력을 받아서 그대로 시행하는 일을 중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희생을 바치는 일은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자공은 양으로 제물을 바치는 일을 없애서 불필요한 제도를 고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공이 보기에 곡삭의 예 때문에 희생을 바치는 것은 재물의 허비이거나 허례의식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공자는 자공의 입장에 반대하였다. 공자는 비록 형식적이지만 희생양이라도 바쳐지고 있으면 후대의 사람들이 왜 이 양이 바쳐져야 하는지의 근원을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곡삭의 핵심은 제후나 현재의 어버이가 왕이나 또는 자신들의 조상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각각 묻고 그 생각을 헤아리면서 현재의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사람들이 곡삭의 희생을 통하여 왕이나 선대의 전해진 것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공자는 소중한 전통들이 현재의 편리함이나 유익함을 위하여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공자는 자공이 재물(양)을 아낀다고 비판하면서 공자 자신은 왕이나 부모에 대한 예를 다하는 것을 아낀다고 한 것이다.
자연만물은 소실되어가고 쇠약해져 가는 것이 기본이다. 늘 약해지고 사라져 가면 다른 자연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런데 그 이어짐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핵심의 요소들만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되며 사라질 수도 없다. 물론 이전이나 지금이나 어떠한 연구도 그 핵심요소들을 분명하게 밝힌 것은 없다. 그저 근사치만을 말하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은 이러한 자연만물의 존속과 변화 전체를 아우르는 필연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적 사태에 근거해서 이러한 요소들이 도외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편 자공과 공자의 이견은 어떤 의미에서는 변화와 현실을 중시하는 자공의 모습과 전통과 근본을 중시하는 공자의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맥추감사절’은 ‘곡삭의 희양’에 비견될 수 있다. ‘맥(麥)’은 ‘보리’이고 ‘추(秋)’는 ‘거두어들임’이다. 언어적 의미로 따지면 맥추감사절은 보리농사를 지어 추수한 사람이 드려야 하는 감사 절기이다. 그러나 오늘날 보리농사를 짓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상황적으로 보면 곡삭의 희양이 없어져야 하듯이 맥추감사절 역시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장차 지켜야 할 절기로 선포하셨다(신 16:9~12).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나그네 생활의 고통과 굶주림의 사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미리 암시하는 예표이기도 하였다. 오순절의 관점에서 보면 맥추절은 교회사적으로 성령께서 강림하신 절기였다. 따라서 맥추절은 오늘날 상황에 맞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절기가 아니라 신앙의 전통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절기 중 하나이다. 그래서 맥추감사절은 지켜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 안에서도 예배 시간과 예배 장소의 다양함, 찬양의 다양함, 성경해석의 다양함, 세속적 영향의 다양함 등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날의 예배 형식이나 설교 등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바뀌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예배의 모든 형식이나 물질적인 요소들조차 철저하게 그 내면에 내재하는 신앙전통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앙의 핵심적 기준은 성경이다. 따라서 일체의 예배형식의 변화나 찬양의 변화 등은 반드시 성경과 일치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은 일생을 사는 동안 그 어떤 상황과 변화 속에서도 오직 성경을 토대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임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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