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3-10-11 09:2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부귀는 뜬구름과 같은 것


子曰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자왈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논어 술이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괴어 누워있을지라도 즐거움 또한 그 안에 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반(飯)’은 동사로서 ‘먹는다’는 뜻이고, ‘소(疏)’는 ‘거칠다’ 또는 ‘엉성하다’, 그리고 ‘사(食)’는 명사로서 밥(식사)을 뜻한다. ‘소사’는 일종의 가난한 사람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곡굉이침지’는 사람이 끼니때가 되어 겨우 조촐하게 식사랍시고 마치고 나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모습이다. 공자가 몹시 어렵고 빈궁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묘사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곤궁한 삶의 현실을 즐기고 있다. 공자의 실력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주군에게 아부만 하면 얼마든지 관직과 지위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였다. 그가 천리와 천륜을 어기고서 부자가 되고 높은 관직을 얻는 것은 뜬구름이 지나가듯이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기에 취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자가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 자체를 즐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낙’을 찾겠다고 일부러 또는 억지로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은 진정 소인배의 일이다. 공자의 경우는 ‘거친 밥’과 ‘물’ 곧 가난과 곤궁이 그의 즐거움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즐거움이 있기에 불의한 부귀는 그에게 뜬구름과 같이 단순히 흘러가서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질 수 있었다.
공자의 이러한 삶의 태도가 제자들과 후대에 미친 영향은 누구든지 자신이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한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이 즐기는 바가 무슨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須知所樂者何事, 수지소낙자하사).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각각 저마다의 즐기는 바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공통된 즐거움의 일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기본 전제는 세상의 삶이 곤궁하고 어려울 때가 된다.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고 지치며 먹고 마시고 누울 곳도 마땅하지 않을 때이다. 한 끼니를 겨우 때우고 빈방 또는 황량한 낯선 곳에 홀로 남겨 있을 때, 과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즐거워할 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이 극한의 상황에 처해 신음하고 있을 때 어딘가로부터 엄청난 재물이나 높은 직위가 제안된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어떤 즐거움을 추구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즐거움은 그리스도를 기뻐하여 그의 삶의 도를 따르는 것이다. 그의 말씀을 따르고 성령의 깨우쳐서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극한의 곤궁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즐거워해야 한다. 그래야만 극한의 곤궁에 처한 형제자매 그리스도인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다. 함께 그리스도를 즐거워하는 삶을 공유할 때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공자가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여겼다는 것은 아예 부귀를 무시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의도는 불법적인 부와 귀는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부와 귀를 취하려 한 것은 아니지만 공자는 분명히 자신이 깨우친 도(가르침)를 세상에 펼치려 하였다. 도의 펼침이 그에게는 부이자 귀였던 것이다. 이 도를 잃게 되는 어떤 것도 그에게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그가 진정으로 즐겼던 것은 ‘의(義)’ 또는 자신의 도였다.
그리스도인에게서도 율법의 의와 복음의 의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그(녀)에게 즐거움이어야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의의 준수가 즐거움이어야 한다. 곤궁할 때나 부요할 때나 의를 준수하는 것이 즐거움이어야 한다.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복음의 의를 지키는 것이 즐거움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의를 지키게 하지 못하는 일체의 것들은 뜬구름과 같은 것을 넘어 아예 우상물이다. 율법과 복음의 의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하는 세상의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대적자다. 그렇다고 우리의 율법과 복음의 의를 지킴이 완전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부족하다. 육신을 지니고 있는 한 완전한 의의 준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한 의의 준수라도 우리가 그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가난하든 부하든, 천하든 귀하든, 모두 함께 율법과 복음의 의를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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