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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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6 23:1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남아공에서 전하는 소식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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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йи 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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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 Kr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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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 여름이 다가오면서 교회(Christ Chur-ch in Stellenbosch)에선 2박 3일간 ‘패밀리 캠프’가 열렸다. 이 프로그램은 매년 한 번씩 전 교인이 주말을 이용하여 근교의 야영장에서 캠핑하며 성경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필자는 처음으로 참여하여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번 캠프에서는 우리 교회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목회 사역을 하다가 남아공에 기독교 문화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돌아온 크론(JB Krohn) 목사의 6회에 걸친 특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강의는 “세속의 신화”(Myth of the Secular)라는 주제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근현대 미술 작품들 속에 담긴 작가들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고 보수적 성경관을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재구성해보는 내용이었다. 참석한 성도들은 나이도 배경도 다양했지만, 강사는 성경을 배경으로 한 예술 작품들을 선택하여 공감을 끌어내었고 남녀노소 성도들은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다.
 필자는 동료 선생님들과 따로 어린이들을 가르치게 되어 주 강의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캠프 기간 동안 학부모 및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많은 성도님이 늦둥이를 가지고 있었고, 한 가정에 아이들 세 명은 기본이고 다섯 명의 아이들을 가진 가정들도 흔했다는 점이었다. 강사 목사님부터 세 달 된 갓난아기와 중학생 딸을 포함해 다섯 명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으니 캠핑은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잔치 같았다. 한국에서 소위 삼포세대(청년들이 삶이 어려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라는 뜻)의 현상들을 지켜봐 오며 ‘육아는 고생’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필자는 이분들은 가족계획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사 도중 아기를 안고 있던 강사의 사모님께 “목사님이 계속 고생만 시키시죠?”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는데, 아뿔싸! 사모님 왈, “네? 아니요! 전 매우 기쁜데요.”
 사모님의 반응은 필자를 당황케 했지만, 필자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그분은 자신의 다섯 아이를 모두 직접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물어보니, 교회의 많은 성도님이 홈스쿨링 교사로서 연결되어 있었고, 부모들은 서로 교재를 공유하고 팀을 이뤄 아이들을 가르치며 세속의 물결을 거스를 수 있는 기독교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그리스도 안의 동료로서 더불어 자라나게 되고, 각자 직업이 다른 부모들도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한마음과 한뜻을 끊임없이 확인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강의는 둘째 날 밤이 되자, 그룹 토의 및 질의응답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누군가 강의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에 대해 조별로 토론한 후 조별로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필자도 한 조에 속해 토론에 참여해 보면서, 한국에서 경험했던 문화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내용의 수준이나 깊이를 떠나서, 이곳에서는 일방적으로 목사의 말만 따르거나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였고 또한 서로 간에 참여를 유도하며 결론을 이끌어 내려 하였다. 심지어 우리 조에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있었음에도 그분도 자기 의견을 한 두 마디 이야기하고는 끝이다. 누구도 그분에게 답을 달라거나, 토론을 이끌어달라거나, 설교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토론은 자정이 되도록 이어졌고 필자는 이들이 가진 수준 높은 교회 문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다시 아침이 되어 아이들을 만났다.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고상한 신지식을 통해 지난밤과 같이 성숙한 교회문화를 누리고 만들어가는 일꾼으로 자란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교회는 한 개인의 구원의 감격을 넘어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었고, 그러한 성도들이 모여 ‘세계관’을 논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필자는 전통 있는 한 교회의 어른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나의 고정관념을 향하여 다시금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녀 교육이 고생이 아닌 기쁨일 수 있는가?’
사흘 전, 갑작스럽게 차드(남아공 소식 1호 참고)에게 커피를 마시자는 연락이 왔다. (차드의 아버지는 큰 농장을 경영하고 계시고, 농대 졸업을 한 해 남긴 차드는 졸업 후 아버지의 농장을 이어받아 경영할 예정이다) 차드는 지난 주말 가족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농장을 경영하고 싶은지를 물었고, 차드는 ‘기독교인으로서’ 농장에 기숙하며 일하고 있는 140여 명의 인부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기독교적’인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곤, 가족들은 밤늦도록 그 ‘기독교적’인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어, 단순히 인부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것에서부터, 농장에 교회를 세우는 것, 인부들의 자녀들 교육을 책임지는 것 등의 대안들이 나왔고 필자에게도 지혜로운 방법이 있으면 조언해달라고 부탁한다. 필자는 차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회의 장로님이시기도 한 그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곤 아들의 지혜로운 의견을 듣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상상해보았다. 그 순간 필자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왜 이들이 ‘고생’을 사서 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6:4)

변도근 (전 장안중앙교회 교사, 현 Christ Church 초등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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