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2-12-26 23:1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피보나치수열과 하나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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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바쁜 일상 속에서 생각할 틈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바쁘게 핸들을 잡고 일터로 향하거나 학생들은 바삐 책가방을 챙겨 학교로 뛰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정신없이 뛰고 움직이고 걸어가는 동안 물끄러미 그 모든 움직임을 보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자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자연(自然)이라는 것은‘본성’,‘천성’이라는 뜻도 있지만 글자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있는 것’이라는 뜻도 된다. 일반적으로 자연이라 함은‘본래 있는 것’, ‘저절로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자연은 자연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은 보통 산과 들, 하늘과 땅, 나무 그리고 해와 달과 별 등을 말한다. 어찌 보면 이것들을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생성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라고 사물을 인식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의 여러 물체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산은 그 곳에 있었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하늘은 푸르렀다. 이러한 자연들에 대해서 철학자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고민을 해왔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자연들은 어찌하여 지금 내 앞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도대체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단 두 가지의 대답만이 존재할 수 있다. 우연과 필연이다.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대답이 아니다.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것은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통칭하여 우리는 자연주의라고 부른다. 자연주의는 내 눈앞에 보이는 놀라운 광경들이 모두 저절로 또는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나는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났으며, 곡식들은 저절로 열매를 맺었으며, 나는 우연히 어쩌다가 지금의 가족과 만났으며, 분자들이 저절로 결합하여 내 몸을  만들었고, 우연의 산물을 내가 먹고 즐기며, 단지 분자들의 멋대로 흩어짐에 의해서 나는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에 의하면 사상이나 사랑이나 맹세, 철학, 감정, 감성 등은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다. 분자들이 저절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경세포의 전기적 신호의 외도일 뿐이다. 이들은 도대체 왜 사는가?
  자연은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자연은 결코 저절로 결합되어진 것도 아니고 우연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하고 있지만 말 못하는 피조물들도 자신의 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하나님을 더듬어 발견할만한 것들을 만물 속에 숨겨두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장 20절)』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만물을 보고서 성경 속의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만물을 만드신 분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물 속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자연은 자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주간에 지으신 분명한 하나님의 작품이요 피조물이다.

자연에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자연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찾아보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은 모든 피조물에 숨겨져 있으나 인간의 이성이 어두워져 잘 찾아낼 수가 없다. 오직 거듭난 이성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중에서 비교적 우리가 알아보기 쉬운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피보나치수열과 피조물에 대한 것이다. 피보나치수열을 토끼의 번식과 관계된 숫자의 나열이다. 이 수열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1). 첫 달에는 새로 태어난 토끼 한 쌍만이 존재한다. (2). 두 달 이상이 된 토끼는 번식 가능하다. (3). 번식 가능한 토끼 한 쌍은 매달 새끼 한 쌍을 낳는다. (4). 토끼는 죽지 않는다. 이러한 규칙을 적용하면 1, 1, 2, 3, 5, 8, 13, 21, 34 … 등의 수가 된다. 앞의 두 수를 더하면 다음 수가 되는 것이다. 1+1=2, 1+2=3, 2+3=5와 같은 형태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수를 우리는 피보나치수라고 한다. 21과 34등은 피보나치수에 해당한다. 해바라기는 피보나치수열의 좋은 예가 된다. 해바라기 꽃에는 많은 씨앗이 함께 자리 잡고 있어서 매우 특징적이다. 그런데 이 씨앗들을 자세히 관찰을 하면 하나의 규칙을 발견하게 된다. 해바라기 씨앗들을 연결해보면 좌측배열선과 우측배열선이 서로 교차하면서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줄 수를 헤아려보면 작은 것은 좌측선이 13줄 우측선이 21줄이다. 물론 좌우측이 서로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 큰 것을 헤아려보면 좌측선이 21줄 우측선이 34줄을 이루고 있다. 이 숫자들은 모두 피보나치수들이다. 해바라기 씨앗들이 이렇게 배열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러한 회전수로 배열될 때 비어있는 공간이 최소가 된다는 것이다. 즉, 해바라기는 태초에 만들어질 때부터 피보나치수열을 이루면서 만들어지면 공간의 낭비가 없이 빽빽하게 씨앗을 모두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바라기들이 언제부터 수학을 배웠는가? 해바라기들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서 배열하였겠는가? 창조주의 세심한 배려가 없이는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또한 닮음비가 피보나치수열을 이루는 정사각형들을 모아놓으면 그림과 같은 곡선이 나온다. 이러한 소라의 모양이 정확하게 이러한 모양을 따라서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우리의 귀도 이러한 모양으로 만들어져있다. 심지어는 우리의 손가락뼈의 길이조차 피보나치수열을 이루면서 만들어져있다.


자연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세상에 자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찌 소라껍질이나 해바라기 꽃에만 존재하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에 하나님의 신성이 깃들어 있다. 땅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게도 있고, 허공을 흩날리는 먼지에도 있으며, 내 코로 들어가는 공기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신성이 담겨져 있다. 세상에 자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았는데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큰 폭발로 인하여 우리가 보는 천체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저절로 꿈틀거려서 생명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고 겁 없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그들이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발표되는 대부분의 과학적 사실들은 그것들을 부정하는 것들인데 어떻게 세상이 저절로 생각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빅뱅에서 사람까지의 이 긴 논리적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절대로 없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그 전체적인 과정의 대부분이 부정되었다. 생명이 저절로 만들어진 예가 없으며, 자연적 과정에서 RNA, DNA가 만들어진 적이 없으며, 저절로 L-아미노산이 만들어진 예도 없다. 우주의 엔트로피가 저절로 감소된 적도 없으며, 초기의 순수한 빅뱅이론은 이미 부정되었다.

세상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에 그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깨달은 자의 눈으로 볼 때 구름을 보아도 하나님의 권능이 보이고 발아래 잡초를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저절로 생겨난 자연이란 없으되 하나도 없다. 해바라기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으며, 소라껍질이 자신의 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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