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4-12-07 19:3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시간에 대한 기독교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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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 flickr.com(Rafael Ro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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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ڵ (: flickr.com(fotodigramas)

기독교인에게 세상에서의 삶은 ‘하나님을 깨닫기 위한 과정’으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끊임없이 고뇌하고 사고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량이 차면 그 훈련 과정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성도들은 끊임없는 연속적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을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아파하고, 시간 속에서 고뇌하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물질의 변화
시간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연구해 왔다. 시간의 의미, 시간의 사상, 시간의 역사, 시간과 철학 등의 주제를 따질 때는 여러 가지 풍성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란 단순해진다. 시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그것은 바로 ‘물질변화의 기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물질이든지 계속 변화하며, 그 변화를 통하여 우리는 한 장면과 그 다음 장면이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시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체계적으로 알기 위하여 시계를 만들었다. 시계를 보라. 모두 물질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다. 해의 이동으로 상황 변화를 알아차리면 해시계, 떨어지는 물의 양으로 변화를 알아차리면 물시계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시계나 원자시계는 그 입자들의 작은 변화를 표현하는 것뿐이며 다른 시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입자의 움직임이 있고, 그 움직임을 인간이 인식하게 되면 시간이 흘렀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변화가 없으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의 물질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시간은 ‘속도’, ‘운동’, ‘바람’ 등과 같은 동적(動的)인 개념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물질에는 꽤나 특이한 성질이 있다.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누가 종이를 태운다고 하자. 종이를 태울 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라. 한번 흩어진 연기는 절대로 저절로 다시 모이지 않는다. ‘열역학제2법칙’이나 ‘엔트로피(entropy)’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물질의 움직임에는 방향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방향성이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이다. 즉, 물질의 움직임에 방향성이 있으므로 시간의 흐름에도 방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절대적인 흐름이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주장하지만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부질없는 개념이다. 

시간세상이 존재하지 않는가?
타종교나 철학사상에서, 가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 논리는 이러하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없는 것이고,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없는 것이며, 현재는 점과 같은 존재이니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고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들어보면 이 논리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시간을 동적(動的)인 개념이 아니라 정적(靜的)인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하는데서 빚어진 오해이다. 시간이란 물질의 변화를 말하는 것인데, 이 세상의 물질들은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므로,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물질들이 변화를 멈춘 적이 한 번도 없다. 사람들 몸속의 세포들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하고 생장한다. 그리고 늙어져서 사멸하는 것이다. 물은 흘러내리고, 바람은 이리저리 흩어지며, 나무와 짐승들과 새들은 쉬지 않고 번식하여 왔다. 시간을 ‘물질의 변화’라고 본다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변화가 쉬지 않고 있었으니 시간도 언제나 있는 것이다.
또 일부 철학자들 중에는 ‘변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들은 변하지 않는 것만이 실존(實存)하는 것이고 변하는 것은 그것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다. 철학에는 이것의 변종(變種)과 아종(亞種)이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았다. 아! 머릿속의 도형과 입체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직 이것들만이 실존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며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수학과 철학과 신학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한 것이며 그 도형과 입체들이 실존하는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철학자들의 말대로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며, 그림자인가? 그리고 이 세상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의미 없는 세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세상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태어나게도 하고, 훈련받기도 하며, 하나님을 깨닫게도 하는 매우 소중한 곳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위의 철학자들의 말에 동조하여 현실 세상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진실로 개탄할 일이다.

천국에서도 시간이 있을까?
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할까? 천국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시간개념이 존재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시간은 있다’라고 보는 것이 옳다. 시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사물의 변화를 기록하거나 느끼는 것이 시간이다. 본디부터 시간이란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변화에 대한 인간의 느낌이며, 그 변화와 진행의 느낌을 ‘시간’이라는 완성품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까? 하나님의 찬양하며 기쁨으로 주님과 함께 생활할 것이다. ‘찬양을 한다’든지 ‘주님과 함께 한다’라는 것은 당연히 ‘변화’와 ‘진행’을 동반하는 것이다. 천국에서 우리 몸이 어떠한 것으로 구성되었는지는 현세대의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부활체는 현재 우리의 육신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 다른 부활체도 생활을 하고 변화를 느낌으로 시간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 상태가 현재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현세상은 천국의 그림자인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전혀 의미가 없고, 오직 천국만 의미 있는 것인가? 천국은 이데아이고 현세상은 천국의 그림자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썩어져서 없어질 것이고 오직 천국만이 의미 있는 것인가! 천국은 이데아이고 현세상은 그 그림자인가? 만일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아주 큰 착각이다. 플라톤의 사상을 기독교에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일부 철학자들은 기독교사상이 플라톤의 사상을 모방한 것이라고 비웃는다. 현세상은 천국의 그림자가 아니며 엄연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일부이다.
천국과 현세상의 공통점은 둘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천국을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땅의 아랫물 세상에 우리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다. 천국도 피조물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동등하다. 다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하고 거듭나는 장소이고, 천국은 거듭난 성도들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그리스도와 영화롭게 사는 장소라는 것이 다른 것이다. 성도들에게 천국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세상도 결코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고, 이 세상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사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들은 서로 별개의 개념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전체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하며 그 중심에 그리스도와 성경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시간과 변화도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의미 있는 것이며, 공간과 물질도 그리스도가 중심이 될 때 참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모든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곽경도 박사 ((재)성경신학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이학박사)
이메일 : exp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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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순서는 매몰 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