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2-12-20 21:1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아버지부터 성령까지


“아버지”는 요한복음에 제일 많다. 이 아버지는 구약성경의 여호와 하나님에서 신약성경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런 구약성경에 신약성경을 연결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성경 전체를 다 담고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예수와 그의 백성인 성도는 영원히 함께한다. 한국교회는 신앙생활에서 기도 중심으로 강조하였다. 새벽기도는 대표적이다. 주기도문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욕심을 구하고 추구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여기서 제기하는 길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를 도출함으로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일차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이 글의 목적이다.

예수께서 자기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셨다. 이 부분은 요한복음 14장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진리”는 길과 생명 사이에서 두 의미를 연결시키고 있다. 구약성경 39권에는 성령으로 가득 차 충만하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에 있어서 그 핵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은 오직 영원하신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의 존재는 영적인 진리에서 그 중심이다. 제일 앞의 길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 글의 제목으로 붙인 것이 바로 길이다. 아버지부터 성령까지는 성경 전체이며 길이다. 이러한 하나의 길을 성경 전체의 흐름을 중시하면서, 두 가지로 나누어 간략히 분석한다.


1)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 소제목은 위의 상위의 제목에서, 그 이면에 들어 있는 과정을 중심으로 포착하였다. 마태복음 마지막에 나와서 구약성경에 마태복음을 연결시켜 정리해 주고 있다. 의미상으로 셋을 연결한 것은 신약성경에서 몇 군데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를 사용하여 자기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하셨다. 마태복음은 구약성경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말라기서를 바로 이어가고 있다. 이런 점의 중요성은 마태복음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있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마태복음을 이은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연결되어서 요한계시록에 이른다. 성경은 영원성을 기초하여 입체적으로 체계화 되어 있다. 이런 의미를 강조하면서 요한계시록에서 앞의 전체를 제대로 조감하고 조명할 수 있다. 지금 살피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도 요한계시록 12장부터 22장까지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보지 못하면, 온전히 해석될 수 없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있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마태복음의 바로 앞에 위치한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을 전체적으로 연결하여 제사장을 들어서, 마무리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강조한다. 말라기서의 최후에는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예언한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말씀은 마태복음 28장까지 아주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왔다. 시편은 전체가 150편으로 모두 메시아를 언약하고 있다. 앞의 욥기는 역사서(창~에)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잘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구약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서는 마태복음의 정리와 마가복음의 시작을 연결시켜 놓고 다음으로 지나가고자 한다.


2) 하나님의 아들의 성령

신약성경을 볼 때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을 구분하여 연관 짓는 점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이것은, 고린도전후서부터 유다서까지에서 짧은 빌레몬서나 요한3서 그리고 유다서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되어 하나님 우편의 증거로 마무리되고 있다. 대개 4복음서에 나오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염두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도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의 성령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성령을 달라고 해서(기도) 주는 줄로 많이 착각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주셨다(行 2:3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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