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09-11-26 04: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5장, 구름기둥의 인도하심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에서 살면서 42번 진을 치며 옮겨 다녔습니다. 단 한번도 모세 마음대로 움직일 때가 없었습니다. 어던 경우도 12 족장들과 회의를 한 때가 없었습니다. 오직 구름 기둥만을 따라 갔습니다.

기도할 때에 성도들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우리를 인도하시고...>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 기둥이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민주화되면 안 되고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오늘 날 성령의 인도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구름기둥은 신호였습니다. 오늘 날 성령님은 우리에게 신호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1) 출발신호

<구름이 성막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 하였으며>(출40:36-37)

이스라엘 백성들은 좀 더 머믈고 싶어도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가야했습니다. 좀 더 가고 싶어도 구름기둥이 머물면 멈추어야 했습니다. 과거는 구름기둥이 출발신호 소리지만 지금은 성령께서 출발신호를 주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성령님은 바울과 바나바로 해외선교를 이루라는 출발신호룰 주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종하였습니다(행13:1-3)

(2) 방향신호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엔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40:38)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도무지 고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갈까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름기둥이 가는 곳으로 방향을 잡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안 좋은 길 같았어도 나중에 지나놓고 보면 가장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홍해쪽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먼길 같았으나 너무도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그리로 갔기에 애굽군대는 다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다 살게 된 것입니다. 만약 가자는 길로 직접 갔더라면 애굽군대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방향을 주십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복음전도가는 것을 막았습니다.(행16:6) 그리고 빌립보로 방향을 틀어 주셨습니다.

(3) 사랑신호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두 가지 사랑입니다.

하나는 알맞는 사랑입니다. 밤에는 추운 광야이니 따뜻한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더운 광야이니 시원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얼마나 알맞는 사랑입니까. 만일 반대로 낮에는 불기둥으로, 밤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했다고 봅시다. 얼마나 고역이었을까요? 또 밤에는 어두워 구름기둥이 안 보일테니 잘 보이라고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낮에는 불기둥이 밝은 해 때문에 안 보일테니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알맞은 사랑인가요? 너무나 놀라운 사랑이요, 너무나 기가 막힌 사랑이요, 너무나 신비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밤낮으로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지금은 성령이 우리와 늘 같이 계십니다.

(4) 생활신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발도, 도착도, 출발과 도착사이의 생활도 모두 구름기둥에 의존하였습니다. 두 기둥이 머무는 기간이 생활기간이요, 머무는 공간이 생활공간이었습니다. 한치도 벗어나면 추워서 죽고, 더워서 멸망되었습니다.

풀가에 매어 놓은 소가 그 끈을 반경으로 풀을 뜯는 것과 같습니다. 두 기둥을 이스라엘이 벗어날 수 없듯이 지금은 성령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성령을 거슬려도 안되고, 성령을 훼방해도 안됩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해야 하고(유20, 엡6:18, 롬8:28) 성령안에서 찬송해야 하고, 성령으로 말씀도 전해야 합니다(행1:18) 십자가만 바라보고, 예수만 붙잡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성령에만 의지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5) 하나님 신호

200만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이 두기둥을 친히 다 보았습니다(38절) 두 기둥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친히 보고 따라 다니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하나님이 주신 신호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6) 영광 신호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과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40:34-35)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두 기둥이 나타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두 기둥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이기도 하였습니다.

(7) 선교 신호

<온 족속이> 친히 보았습니다. 온 족속이 이를 보게 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선교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누구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다 보아야 합니다. 다 동참해야 합니다. 두 기둥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ㄹ백성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온 족속이 구원받도록 성령은 지금도 맹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선교의 성령이십니다.

그때 두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이제는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구름기둥 공부를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어떠한지를 알아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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