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04-30 08:5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언어 5, 기독교 目次觀 없나?


전체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은 없나? 또는 전체의 체계를 간파하는 견해는 없나? 그리고 성경에 의한 성경개론이나 목차는 없나? 이와 같은 것들이 이 제목의 개괄적인 의미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분석하고 종합하기 위하여 눈(eye)과 보다(see)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들이 사용된다. 눈과 目과 eye의 문자들은 아주 흥미롭다. 그 문자들의 구성은 마치 눈알의 모양을 연상시켜 주듯이 상하좌우로 바뀌어도 같다. 위 제목을 분석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목차상의 글자들은 눈 목(目)과 볼 관(觀)이다.

1)진면목의 목(目)

 이목구비와 진선미(眞善美) 그리고 진면목(眞面目) 등은 예로부터 시대적인 문화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진면목의 의미에는 입체적이고 전체적인 머리와 평면적인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의 눈이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들어 있다. 이러한 논리와 체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것이 목차이다.

 ①눈동자 중심의 사방 모양(罒)
 눈을 의미하는 目(罒)은 중앙에 자리 잡은 눈알을 중심으로 그 사방이 형상화 된 것이다. 이 目(罒)이 가로와 세로의 모양으로 모두 사용되는 것은 그 눈의 본질적인 의미를 유지하려는 것과 한자의 기본적인 모양을 조화롭게 하려는 등의 문화 때문이다. 이 罒은 한 글자의 위에 있을 때 사용된다. 예를 들면 택자(擇者)에 있는 엿볼 역(睪)과 꿈 몽(夢)과 덕 덕(德)과 같은 경우이다. 인간의 감정은 특히 눈을 통하여 잘 나타난다. 현대과학은 눈을 통해 뇌(腦)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의 중요성 때문에 그에 관한 속담이나 격언도 많이 있다. 이렇게 중요하고도 많이 사용되는 눈이라도 얼굴(머리)에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다는 진실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②面目체계에서 나온 目次
 지정의와 진선미와 진면목은 모두 속에서 밖으로 또는 위에서 아래로 표현되는 논리체계의 용어이다. 이러한 내용과 같이 목차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목으로부터 나와 제목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한다. 입체적인 머리에 근거하여 표현된 것이 면목(面目)이며 이목구비다. 머리의 앞을 표시하는 이마와 받치는 턱과 연결하는 목이 없이는 이목구비가 있을 수 없다. 머리에서 나온 감각기관들이 서로 간에 너무 밀접하기 때문에 같이 사용된다. 이목과 눈코와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와 같은 것이다. 목차(目次)에서 次는 침과 코가 나오는 재채기의 모습이다. 이 글자 앞의 빙(冫)은 재채기하면서 나오는 타액(唾液)이다. 목차는 내용을 구조적이면서 유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원상에 있어서 주제는 머리의 이마이고 제목은 이마의 눈이며 목차는 눈 아래의 코와 입이다. 이처럼 목차는 면목에서 나와서 면목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이 머리의 신학적인 의미가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2)눈여겨볼 관(觀)

 이 觀은 사물을 잘 주의하여 봄이다. 잘 관찰하여 체계화 되어진 견해가 바로 觀이다. 주의하여 전체를 보는 것은 지혜와 밀접하다. 자기의 눈이 얼마나 불안전하고 한계가 있는지를 누구나 경험한다. 지혜와 사고력에 기초하지 않은 인간의 눈 자체로는 공중에서 보는 새의 눈보다도 못하다. 성경을 통하여 世界를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는 동물과 다른 행복을 누리는 기초가 아닐까? 

 ①주시하는 새의 둥근 두 눈(口口)
 볼 관(觀)자는 머리에 뿔 모양의 큰 털을 지닌 새가 두 눈으로 주시하는 형상이다. 이 觀에서 왼쪽은 황새 관(雚)이고 오른쪽은 볼 견(見)이다. 눈 目에서 나온 見은 신체를 표현함에서 눈을 돌출시켜 강조한 것이다. 이 見은 본다는 뜻에서 알아본다는 뜻으로 발전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견식(見識)이나 식견(識見)이다. 이렇게 좌우의 결합으로 형성된 이 觀은 관찰이나 인식 방면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 주관과 객관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성경관(聖經觀)과 신관(神觀)과 세계관(世界觀) 등은 21세기 기독교가 짊어진 핵심과제일 것이다.

 ②전체의 체계에 대한 見解
 2008년 1월에 출판이 시작되어 2009년 8월에 8차로 인쇄된 <주역>에 관한 글을  인용하여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주역>문화계통은 동방문화의 정화이다. 문자로 고증할 수 있는 것도 이미 약 5천년의 역사를 지니며, 중화문화백가학설의 사상보고이다. 그러므로 서방의 2천년 정도의 <성경>문화계통과 비교하면, 동방의<주역>문화계통은 확실히 유구하고도 많이 면면하다. 역사가 유구하며 풍부하고도 화려한 중화문화에 있어서 그 최초의 근원은 바로 오래되고도 박대하며 정심한 <주역>이다(<周易>文化系統是東方文化的精華, 文字可考的就已有約五千年的歷史, 是中華文化百家學說的思想寶庫. 而與西方的兩千多年的<聖經>文化系統比較, 東方的<周易>文化系統, 顯然要悠久而綿厚得多. 可以說, 源遠流長豊厚華美的中華文化, 其最初源頭正是古老而博大精深的<周易>)”(圖解周易,責任編輯丁建新,北京,2009年8月第8次 印刷).

 성경은 문화가 아니고 영원한 복음이다. 그 복음은 로마서의 시작 글에 간단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다(롬1:1~4). 그 영원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그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마16:16).

기독교 목차관의 근거는 성경이다. 성경에 의하여 신관이 나오고 그 신관에 의하여 인생관과 역사관과 세계관이 나오게 된다. 성경의 기본적인 목차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다. 구약성경의 내용이 여호와의 언약이고 신약성경의 내용이 그리스도 성취이다.

그 언약은 얼굴 약속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언약으로 확실한 언약이며 그 본질이 영원한 언약이다. 그 성취는 언약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몸소 실행한 것으로 그리스도 성취이며 그 본질이 영원한 성취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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