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09-04 01:5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언어9/언약성취에 몸 있나?


언약과 성취를 하나로 묶어 언약성취로 사용할 수 있음은 참으로 통쾌하다. 제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쁨은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연결하여 관통할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언약은 구약성경의 내용이고 성취는 신약성경의 내용이다. 성경의 생명은 그것들이 연결되어 있음에 있다. 마치 사람의 목숨이 대뇌(大腦)와 척수(脊髓; 연延髓)를 연결한 뇌간(腦幹; 腦橋)에 달려있음과 같다. 이 뇌교(pons)가 끊어지면 사람은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것은 이 뇌간과 같은 언약성취가 막히거나 단절되지 않고 정상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에 계시체 들어 있나?  이것이 위 제목의 의미다.
 
1)여호와의 언약

계약은 상대성을 지닌 둘 이상이 의사 표시를 함으로 성립된다. 계약의 방법은 조건으로 그 사상은 인본주의이다. 이 계약은 도덕과 밀접하다. 계약의 성질은 도덕적이고 상대적이며 조건적이다. 성경이 근본적으로 상대적이고 조건적이라면 진리가 될 수 있겠는가? 성경이 어떤 상대나 조건에 따라 변한다면 절대적인 진리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언약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①계시의 말씀 언(言)

 이 말씀언은 참말 하고 있나?<3>에서 ‘도덕 아닌 말씀 언’으로 해설 된 바 있다. 곧 말할 때 입 중심의 얼굴 형상이다. 여기서 계시의 말씀으로 분석되는 것은 여호와의 언약에 의하여 나오는 의미다. 이 말씀 言자가 여호와의 언약에 사용되기에 성경전체의 핵심과 관계되고 있다. 성경전체의 핵심은 ‘하나님은 여호와이심’이다. 여호와의 언약은 계시의 말씀이다. 이 계시의 말씀은 섭리와 찬양과 예언에 의한 언약이다. 언어나 용어에서 글자와 글자가 결합하여 중요한 의미가 담기고 내재하게 된다. 이 ‘언약’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꾸준히 분석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②참말의 묶음 약(約)

구약과 신약이라고 할 때에 사용되는 이 묶을 約의 의미는 참으로 깊고도 넓다. 이렇게 의미심장한 이 約의 의미는 언약성취의 주제에 확실히 연계되고 있다. 舊約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옛것의 묶음이고 新約은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새것의 묶음이다. 창세기의 記부터 요한계시록의 錄까지가 신구약성경 전체의 기록이다. 이 約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여 매다는 뜻이 들어 있어 자기 존재를 묶는 약정이나 맹세다. 섭리와 찬양과 예언을 통한 그 모든 언약은 여호와 스스로가 자신을 묶어 맹세하는 선언이다. 자손과 땅과 통치 언약은 자기 존재의 확증이다. 위의 言이 얼굴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언약은 주 하나님 여호와의 자단(自斷)이고 자서(自署)이며 얼굴도장(圖章)이다. 
 
2)그리스도 성취

여호와의 언약에 근거한 성취는 다 이루었다(成了)는 의미다(요19:30). 다 이루었다는 의미는 여호와의 언약대로 오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 성취는 구약성경전체인 언약을 근거로 한다. 이 성취의 근본은 영원한 언약인 작정이다(마6:10). 이 성취는 神이 인간의 몸을 입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특별계시다. 여호와의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人子라고 하신 의미는 이 언약성취와 밀접하다(마16:13~20).

①몸에 이룰 성(成) 

언약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成就는 글자의 모양은 비록 복잡하나 그 의미는 재미가 있고도 의의가 있다. 앞의 言자는 두 차례 다루게 되어 비교적 간략히 서술하였다. 이 이룰 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 成이 몸이나 肉身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成에 있는 창과戈는 전쟁에 사용되는 창이나 칼과 도끼 등의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인가? 옛날의 전쟁에 필수품이 이 戈였다. 이 戈는 전쟁의 도구이며 방법이다. 전쟁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싸우나? 이 질문이 전쟁의 목적이다. 그 전쟁의 목적은 다름이 아니고 바로 몸이다. 이러한 관찰과 분석은 이 成就에서 成과 就의 결합이 너무도 안성맞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戈는 파생하여 다섯째천간무(戊)와 수자리수(戍) 그리고 이룰성(成)을 만든다. 이러한 연결을 통하여 成에는 조금 굽힌 人과 장정(못)정丁 그리고 갈고리궐亅 등이 내재되어 있다. 무기를 몸에 지니고 무기로써 몸을 공격한다. 언약성취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成에 몸이 항상 함께한다는 의미와 잘 연계지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왔다는 의미가 人子다. 이 인자는 구약성경에서 언약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의 의미에 연계되어 사용되었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가 만들어 보내신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 人子라고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人子는 구약성경에서는 에스겔서에서 대부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인자는 고난에 동참하고 전쟁에 파견되어 창에 찔릴 수 있는 전사나 선지자와 같은 인물이다. 이렇게 구약성경에서 사용된 人子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자기에게 사용하신 것은 여호와의 언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②목적 이룰 취(就)
 
이 이룰 취(就)는 논리전개의 효율을 위해 위의 成과 함께 연결하였다. 이제 글의 전체의 마무리를 위해 간단히 연결하고자 한다. 이 就의 부수는 절름발이왕尢이다.  이 就는 분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아감이다. 거취(去就)나 취업(就業) 그리고 취직(就職) 등에서 확인된다. 예수는 왜 오셨나? 여호와의 언약대로 오신 人子의 목적이 구속중심인가? 아니면 언약의 성취중심인가? 이 언약성취의 논리체계는 하나님이 여호와로서 존재하심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닐까? 이 시대는 이와 같은 문제를 성경전체에 근거하여 확인하여 확증해야 할 때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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