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12-29 22: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언어 13,죄 없이 고난 받은 어린 양


구약의 제사에서 쓰인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해 가는 중요한 과정이 성경말씀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다. 이유와 목적을 배제한 단순한 정보의 전달은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요한계시록에 특히 많이 언급된 ‘어린 양’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논리적인 흐름에 중심을 두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1)흠 없는 어린 양

흠이 없는 양의 중심은 구약성경에 있다. 구약성경 중에서도 레위기와 민수기 그리고 에스겔서에 집중되어 있다. 이 흠이 없는 양이 지니는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나 제물의 조건이다. 그 조건은 온전하여 부족함이 없는 합당한 것이다. 이삭을 대신한 양(창22장)이 여호와이레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논리에 의하여 자체적으로 증거 되고 있다. 

①부족함이 없는 순결한 양(羊)

위의 창세기 22장에 증거되는 수풀에 뿔이 걸린 수양(羊)은 하나님께 이삭을 대신하여 바쳐진 번제이다. 또 출애굽기 12장에 증거되는 유월절의 어린 양은 흠 없는 일 년 된 수컷이다. 이 모두는 하나님을 여호와로 계시하기 위해 준비되어 부족함이 없는 순결한 양들이다. 이렇게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고 순결한 점이 여호와께 바쳐지는 제물의 조건이다. 여호와께서는 집 문 좌우의 설주와 인방에 칠해진 어린 양의 피를 증거물로 삼아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지나가셨다. 이러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제물의 대표가 하나님께서 정하신바 흠 없는 일년 된 어린 양이다. 제물로 준비되는 어린 양은 깨끗한 양털을 지니고 있다. 이 흰 양털은 순결함의 상징이다. 이사야서 1장에서 이스라엘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구약성경에서 제물로서 흠이 없고 순결한 양들은 모두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②다윗의 뿌리인 성결의 영(灵)

 구약성경전체를 마태복음의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정리하여 요약하였다. 신구약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예수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빛나는 새벽별이라고 소개하여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다윗의 뿌리가 지니는 의미는 다윗을 있게 하는 근원이라는 의미다. 또 빛나는 새벽별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영원한 어린 양의 영광을 심판의 主로 밝힌 것이다. 창조주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는 말씀이 이 내용을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다. 신구약성경을 총체적으로 연결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정리하고 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이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 흠 없는 어린 양이 증거하는 본질은 이스라엘 국가로써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의 예물로서 흠 없는 어린 양은 성결의 영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바울사도는 다윗의 뿌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성도들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존되기를 간구하였다(살전5:23).

2)죽었다가 살아난 어린 양
 
죽었다가 살아나신 어린 양은 신약성경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강조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고 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깊다고 하겠다. 여기서는 아직 죽지 않은 세상 죄를 담당할 구속주(救贖主)를 가리키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많이 언급된 어린 양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다. 

①육체로는 심판받은 羊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는 것은 육신을 입은 잉태부터이다. 보통 예수의 고난을 십자가상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십자가상의 고난은 고통의 절정으로 큰 소리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고난은 우리 인간과 동일한 육신(체)을 입는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속죄 사역은 잉태부터 시작된 것이다. 잉태부터 시작된 희생 제물로서의 양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언약의 자손으로 증명되었다. 그렇게 하여 여호와께서 구약성경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처리한 사실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의 생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진 짐을 인간 스스로가 지고 가려고 한다는 점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성경의 논리적 증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으로 인하여 육신의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다는 점이다. 세상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언약된 대로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장이 되셔서 준비된 제물로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이다. 세상 죄를 짊어진 어린 양으로서(요1:29) 다 이루었다(요19:30)는 것은 구약성경을 다 성취하셨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 육신(체)을 입으신 것은 성도들의 죄를 짊어진 어린 양이 되어 심판을 받으신 것이다.

②영으로는 심판하신 主

모든 육체는 풀이나 꽃 같이 시들어 떨어지며 썩어 없어진다.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영은 세상이 없어져도 영원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는 사람처럼(죽은 가운데서) 심판(죽음)을 받고 영(靈)으로는 부활하신 분이다(삼하4:9, 단12:2,요21:14, 행3:15, 롬1:3~4, 고전15:20, 계1:5 등). 이렇게 육체로는 죽고 영으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요한계시록에서 어린 양으로 여러 번 묘사하고 있다. 예수의 본성을 4복음서의 마무리인 요한복음에서 증명하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를 요한계시록에서 확증하고 있는 것은 그 의미가 심히 깊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린 양이심을 증언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요약이며 신구약성경의 논리적인 정리인 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는 부활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의미는 세상에 대한 승리이며 죄에 대한 심판이다.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은 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스도이신 어린 양의 피는 승리의 증거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피다. 어린 양의 보좌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평안과 찬송이 있을 뿐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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