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2-09-18 15:2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34,이런 기억 있나?


제목에서 사용한 이런 기억은 성경에 중심을 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떨어지는 기억은 인간의 기억이다. 떨어지는 기억이 아닌 영원한 기억이 있는가? 이것이 이 제목의 의미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서 얻어낼 수 있다. 떨어지는 인간의 기억과 떨어지지도 않고 불변하는 기억을 대비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1)기억의 主

 기억의 주는 뜻을 세우고 그 뜻을 항상 기억하시는 분이다. 또 기억의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기억나게 하시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게도 하신다. 기억의 주는 기억의 기초나 근거를 모두 가지고 계시는 분을 의미한다.

①自己의 맹세에 대한 기억

 하나님  여호와의 작정은 그 분의 뜻이며 맹세이다. 맹세는 보편적으로 대등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이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맹세는 스스로 자기에게 하는 맹세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여호와의 맹세는 바로 신구약성경이다. 그 맹세는 언약의 말씀이고 성취의 말씀이다.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맹세하신 것을 기억하시는 내용이다. 이 기억은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영원하신 분의 것이다. 그 분이 자기의 삶을 두고 자기에게 맹세하신 뜻을 영원히 기억하여 온 세상을 섭리하신다. 성경이 기록되게 된 근거는 영원히 기억하시는 기억의 주께서 영원히 기억하심이다. 영원히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역사의 기준이 되는 때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권자 자기에게 맹세한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며 성령의 오심이다. 이러한 자신에게의 맹세는 모든 논쟁의 최후 확정을 위한 것이다(히6:16).

②작정한 때에 대한 기억

 작정한 때를 정확히 맞추는 일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을 지배하는 진정한 주인만이 이것을 할 수 있다. 요셉이 이집트에 팔려가서 누명을 뒤집어쓰고 투옥되었다. 그 때에 요셉은 이집트 왕의 술 맡은 시종장과 빵 굽는 시종장에게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요셉은 술 맡은 시종장에게 일이 잘되면 요셉 자기를 기억해서 구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러나 술 맡은 그 시종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나서 바로왕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시간과 인간을 모두 지배하시는 분이 이렇게 하신 것이다. 이집트의 종살이 400년이나 바벨론에 포로가 된 70년 등 이 모든 것은 기억의 주께서 작정하신 것이다.   

2)기억의 종(從)

 기억의 주가 있으므로 기억의 종이 있게 된다. 기억의 종은 기억의 주께서 기억하게 하심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을 문자로 기록해 두고 이것에 대한 해석이나 기억이 없다면 무가치한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기억의 주가 아니라 기억의 종이다.   

①망각의 명수인 인간

 인간이 잊어버리는 명수가 된 것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서 시작되었다. 아담이 금령을 어긴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림에서 나온 것이다. 위의 요셉의 사건에서, 그 술 맡은 시종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라고 하듯이 간곡히 부탁하는 요셉을 잊어버렸다.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예수께서 잡히신 현장에서 예수의 말씀대로 3번 예수를 부인하였다. 그는 한 여종 앞에 예수를 다시 부인하였고 또다시 3번째에는 저주하면서 예수를 모른다고 맹세하였다. 이 모습의 기초는 바로 망각이다. 세상만사가 허사로 되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함에서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망각의 명수라는 이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②달력을 왜 중시하나?

 캘린더를 중시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이것의 이유는 인간이 항상 때와 동반하기 때문이다. 동반되는 그 때를 잊지 않으려고 달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달력이 있다고 해서 날을 잊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답변은 회의적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잘 잊어버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주를 기억할 수 있게 되는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까?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거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와 매우 밀접하다. 생각이나 기억은 사람의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속의 주인이 있는가?  이것은 성경의 전체에서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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