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3-05-26 14:1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의 언어<44>-죽은자 가운데서의 부활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매우 밀접하다. 이론적으로 생사는 잘 붙어 사용되며 실제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동반되어 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남의 표현은 신약성경에 있다. 이 의미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서부터 많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혀 주신 것은 바로 죽은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의미와 떨어질 수 없는 내용이다. 또 말라기서의 4장에서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생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좌우하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창세기부터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까지 의미있게 내재되어 있는 이 부활을 영과 육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렇게 영과 육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은 죽음에서의 부활을 그 기초와 과정으로써 잘 살펴보기 위함이다. 영과 육을 이원(二元)적으로 보는 관점은 요소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영원적인 관점에서 영(靈)은 있는 것이고 육(肉)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1)영을 지닌 존재 중의 부활
영(혼)의 유무 문제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중요한 논쟁으로 되어 왔다.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학문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보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성경을 제쳐 놓고 그 어디에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을 강조하여 제시하면서 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중심으로 생사를 분석한다.

① 살았었던 존재의 부활
현재에 죽었다는 것은 과거의 살았음에 기초하여 어떤 과정을 통하여 나온 결과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생명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생명의 현상이지 생명의 본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생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영의 본질적인 변화가 있을까? 위에서 영원적인 관점에서 영은 있다고 서술했기 때문에 여기서 이 문제로 전개할 필요성은 없을 것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영이 아닐까? 성경이 말하는 부활에서 영을 배제하고 성립될 수 있을까? 영의 존재 유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풀릴 수 있는 문제로 사료된다. 
② 잠들었던 존재의 부활
 부활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을 잠드는 것과 동일시하는 근거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죽은 것을 왜 잠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이유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언약자손의 죽음을 두고 그 열조와 함께 자는 것이라고 자주 해석하였다. 이것은 영의 존재에 근거하여 설명한 것이다. 육신의 호흡이 없고 깨어나지 않는데도 잠들어 있다는 이 본질을 무슨 근거로 설명할 수 있나? 이스라엘 열조의 대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다. 이러한 열조를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창세기에 자세하다. 죽음은 낳음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 의미는 성경만이 설명해 주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태(胎)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열고 닫는다는 사실을 본질적으로 밝혀준다. 죽었다고 해서 영(靈)이 없어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육과 분리된 영의 존재를 밝혀 증명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2) 육을 지녔던 존재의 부활
 보편적으로 육신에 대한 관심은 매우 크다. 그것은 감각 문제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보이는 육신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알며 느끼며 움직인다. 이 때문에 영(혼)이나 정신 문제에 비해서 육신이나 건강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남에는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았다는 것이 함의되어 있다. 육신을 지녔던 이는 반드시 시간과 함께 호흡이 정지되어 뇌사의 종국을 맞이한다.

① 숨짐에서의 깨어남
 육신을 가지고 활동하던 자의 죽음은 호흡이 정지되는 것과 동일하다. 호흡은 목숨이 유지되고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 자신도 이 육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인간에게 물음을 제기한 내용을 인용해 본다. “정신은 참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하나의 실재다. 정신작용이란 결코 두뇌 내부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정신의 논리적 과정을 살펴보려고 하므로, 이 과정이 기계화된다고 여겨지는 기관으로서 우선 두뇌에다 나의 논의를 집중시켜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제이콥 브로노프스키 지음/김용중 옮김, 인간을 묻는다, 개마고원, 233쪽). 이 내용은 뇌사와도 관계됨으로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하여 인용하였다. 육을 지녔던 존재의 부활함은 호흡이 완전히 정지되어 기계적인 활동의 멈춤에서 새로운 기억으로 새롭게 깨어나는 것이다.

② 뇌사로부터의 깨어남
 성경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강조할 때 구약성경을 사용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제 삼일에 살리심을 받아”(고전15:3~4)라고 함으로써 ‘성경대로’를 특히 강조하였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그 죽음의 성질에 호흡이 정지된 뇌사의 완결성이 들어 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실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육을 지니시고 이 땅에서 활동하신 것이다.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살리심을 받은 것은 성결의 영이 있음을 확증한 것이다. 호흡을 가지고 있음과 머리의 뇌(腦)조직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아는 것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함에 필요한 중요한 과정이다. 뇌사라는 죽음으로부터 다시 사는 것은 거룩한 영의 존재로 말미암아 영적인 존재를 확실히 알아보는 존재로 깨어남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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