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12-04 15:0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제2권 제4장 하나님의 섭리 영역(領域)


“사람은 필연에 의하여 죄를 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발적으로 죄를 범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마귀에게 종노릇 하는 상태에 매여 있는 동안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의지 보다는 마귀의 의지에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동에서 마귀가 행하는 부분과 사람이 행하는 부분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악한 행위들 가운데 어느 정도까지를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으로 돌려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불경스러운 자들의 눈먼 상태와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든 불법한 일들을 가리켜 사탄의 역사(役事)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사의 원인을 사람의 의지 바깥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악의 뿌리가 사람의 의지에서 돋아나며, 사탄의 왕국의 근본이, 즉 죄가 사람의 의지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재난을 통해서 그의 종의 인내를 연단시키는데 있었고, 사탄은 그를 절망의 상태로 몰아넣으려고 했고, 갈대아 사람들은 법과 정의를 무시하고 남의 재산을 가로채어 이득을 얻으려 했다. 이처럼 서로 목적이 확연히 다르니, 행위의 성격이 거기서 이미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그의 진노의 사역자로 삼으셔서 심판을 수행하게 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이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목적을 갖도록 하시며, 그들의 의지를 불러일으키시고, 그들의 노력을 강화시킨다.

동일한 역사에서도, 주께서 하시는 일과 사탄과 악한 자들이 행하려 하는 일들은 언제나 서로 완전히 다른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도구들을 그의 손으로 붙잡으시고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게 하셔서 그의 공의를 이루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버림받은 자들을 그의 섭리로 그들에게서 어떠한 목적을 이루시고자 하시든 간에, 사탄이 개입하여 그들을 부추긴다는 사실은 한 구절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을 것이다. 사무엘서를 보면,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중략) 이것이 성령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않다. 여기서 더러운 영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이라 부르는 것은, 그 영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권능에 복종하여 그의 도구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충동을 받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 의지가 그쪽으로 기울어지든, 혹은 반대로, 우리에게 해가 될 일을 우리의 지성과 마음이 삼가든, 그때마다 언제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거기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 中

  칼빈은 3장에서 인간의 악행은 선(善)의 결핍에서 기인되고,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죄의 원인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규정하고, 선행은 인간의 협력이 전혀 배제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강조했다. 4장에서는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인간과의 함수관계(函數關係)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영역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논증에서, 칼빈은 인류 최초의 범죄자와 불신자들에게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분적으로 언급하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본 장에서도 사탄과 인간의 역할을 통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특히 칼빈은 죄의 책임소재를 명백히 규정하면서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인간의 역할과 범주에 대해 논리를 개진한다.

  첫째, 사탄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사람은 필연에 의하여 죄를 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발적으로 죄를 범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마귀에게 종노릇 하는 상태에 매여 있는 동안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의지 보다는 마귀의 의지에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동에서 마귀가 행하는 부분과 사람이 행하는 부분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칼빈의 주장을 요약하면, 인간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에서 범죄를 했지만 그 책임은 인간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연과 자발적인 범죄의 관계에서 나타난 그의 주장은 인간이 범죄 할 수밖에 없도록 정해진 상황일지라도, 범죄의 주체는 인간의 자발적인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또한 필연적인 상황에서 죄를 범할 때는 자발적이지만, 마귀에게 종속되어 있을 때는 마귀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칼빈의 이러한 견해 역시 다분히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필연적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인간의 범죄는 사탄의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아담의 범죄에도 사탄은 인간의 마음을 주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것에 대한 표현을 사탄은 인간을 유혹했고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른 결단으로 유혹에 넘어간 것처럼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타락이전에는 인간이 사탄에게 종속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사탄과 인간 모두가 하나님께 종속된 상태라는 것이다. 칼빈은 죄의 책임소재 때문에 필연과 인간의 자발적인 행위로 구성된 이분법적인 도식으로 범죄행위를 설명했지만, 성경적인 용어로는 필연보다 하나님의 ‘작정’이나 ‘뜻’으로 표기함이 더 명확한 것이다.

  칼빈은 타락한 인간은 마귀에게 종속되어 있다하더라도 마귀와 인간이 행하는 부분을 구별해서 이해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불신자는 사탄에게 완전히 종속된 상태이고, 신자(信者)는 성령과 사탄에게 이중적으로 종속된 상태인데 어떻게 악행의 관점에서만 사탄과 인간을 구분하여 독립적인 행동으로 단정할 수 있겠는가. 종속(從屬)이란 주(主)가 되는 것에 완전히 매여 있는 상태를 뜻하는 용어이다. 종속관계란 주종(主從)관계를 의미하며 자유가 없으며 노예와 방불한 것임을 뜻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 16절에서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태초부터 근원적으로는 하나님께 종속된 존재이며 타락한 이후부터는 사탄에게 종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탄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종속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독립된 개체나 범주로 설명하면 안 될 것이다.

  둘째, 사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된 죄의 책임소재에 대해서는 “불경스러운 자들의 눈먼 상태와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든 불법한 일들을 가리켜 사탄의 역사(役事)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사의 원인을 사람의 의지 바깥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악의 뿌리가 사람의 의지에서 돋아나며, 사탄의 왕국의 근본이, 즉 죄가 사람의 의지에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서 욥기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목적은 재난을 통해서 그의 종의 인내를 연단시키는데 있었고, 사탄은 그를 절망의 상태로 몰아넣으려고 했고”라고 설명한다. 즉 욥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사탄, 인간이 함께 역사하지만 목적과 방법의 차이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탄과 사람의 추악함을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칼빈의 말을 요약하면, 인간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서 악행을 했지만 사람의 의지로 자행된 일이기 때문에 사탄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는 인간이 담당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사건에(욥기) 하나님, 사탄, 인간이 개입하지만 각각의 역할과 목적에 따라서 차별화해야 된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사탄을, 사탄은 인간을 주관했지만 실제로 범행한 인간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인간의 불경스러운 행동이 사탄의 역사이지만, 악의 뿌리와 죄가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책임을 사탄에게 전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동일한 사건에(욥) 나타난 각자의 역할과 목적으로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목적은 욥을 연단시키기 위한 것이며, 사탄은 욥을 절망의 상태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섭리의 범주가 다르다는 것은 논리의 혼란만 가중시킨다. 사탄의 역사와 인간의 자율적인 행동 그리고 동일사건에서 역할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인간의 범주가 따로 설정되고, 악행의 책임을 각각에게 분담시킨다는 것은 극명한 이분법의 전형이다. 물론 역할과 목적에 따라서 일의 성격을 분류할 수는 있지만, 자칫하면 하나님과 사탄, 인간이 각각의 범주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칼빈의 주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해서 사탄과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작정대로 섭리되어 진다는 일원론적 체계와 상충된다. 물론 칼빈은 후반부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단일체계에 의한 섭리를 강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善)의 영역, 사탄은 악(惡)의 영역, 인간은 죄의 영역으로 분류하여 역할과 목적에 따라서 독자적으로 역사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하나님과 사탄 그리고 인간이 삼각구도를 형성하여 서로 충돌하며 갈등하는 관계로 비약될 수 있다.

  하나님과 사탄,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 권위에 종속된 주종관계라는 도식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죄의 책임소재를 밝히는 부분에는 모순점이 있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는 유기적으로 종속된 체계이기 때문에 사탄이나 인간의 독자적인 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야만 절대주권이란 용어도 성립되며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설명도 타당해진다.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유기적인 체계는 주창하면서도, 죄의 책임소재를 설명할 때는 사탄과 인간을 독립적인 의지의 존재로 규정함으로 논리의 모순을 가져왔다. 앞의 단원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책임은 절대자에게 부과될 수 없으며 반드시 절대자가 상대자에게 일방적으로 지우는 것이다. 이 부분만 정리되면 하나님의 섭리체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분법적 도식을 도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종속된 존재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의 섭리 과정상 인간은 사탄에게, 사탄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일원론적 체계를 확증할 수 있다. 단, 하나님께서 신자는 성령의 소욕에 매이게 하시거나 아니면 육체의 소욕에 매이게도 하시지만, 불신자는 전적으로 사탄에게 종속시켜 섭리하신다. 그렇다고 해서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면에 인간이 자유의지의 결정에 따라 실행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책임이 부과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섭리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주도한 일이지만, 악행의 책임은 절대자 하나님께서 당사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과하신 것이다. 절대자란 어떠한 피조물로부터도 책임추궁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상대자에게 책임을 묻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께 책임을 부과할 수 없고 또한 입법자이기 때문에 죄의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첫 번째 논증에 나타난 칼빈의 의도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종속된 상태를 입증하려는데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칼빈은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에 모든 섭리를 하나의 체계에서 설명하지 못하고 이분법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두 번째 논증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탄의 관계와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한 일을 위해서 사탄을 도구로 쓰시지만 선행(善行)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先行)됨을 밝히고 있다.

  첫째,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과 사탄에 종속되어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그의 진노의 사역자로 삼으셔서 심판을 수행하게 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이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목적을 갖도록 하시며, 그들의 의지를 불러일으키시고, 그들의 노력을 강화시킨다.”라고 말한다. 한편 하나님과 사탄의 역사는 확연히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동일한 역사에서도, 주께서 하시는 일과 사탄과 악한 자들이 행하려 하는 일들은 언제나 서로 완전히 다른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도구들을 그의 손으로 붙잡으시고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게 하셔서 그의 공의를 이루게 하신다.”라고 증언한다.

  칼빈의 주장을 요약하면, 인간은 사탄에게 사탄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고, 하나님과 사탄의 사역이 다르지만 주체와 도구의 관계 속에서 선악간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인간과 사탄이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음을 언급하지만, 사탄은 진노의 사역자로 사용하시고, 인간은 본능적인 욕구대로 의지를 충동하게 하셔서 행동하게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탄의 역사는 주체와 도구로서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칼빈의 구분은 정확하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하나님의 섭리방법에 불과하다. 칼빈이 이러한 논조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설명하려는 것은, 하나님께는 선한 것만 존재하며 악의 주체는 사탄과 인간이기 때문에 죄의 형벌에 대한 책임은 사탄과 인간에게 있음을 증거 하려는데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은 악한 일에 사탄을 도구로 사용하시면서 작정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시고, 인간의 악행 역시도 사탄에게 종속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즉, 하나님의 섭리의 근본적인 구도는 하나의 총체적인 영역과 범주 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하나님이 집행하시고 섭리하시는 유기적인 체계이다. 그런데 칼빈은 하나님의 뜻과 주권을 선행(善行)에만 편중하는 인상을 준다. 하나님은 선행과 악행 모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이루어 가신다. 이에 대해 여호수아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수23:15)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종합적이며 유기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과 사탄과 인간을 세분화하여 역할과 목적에 따라 차별화시키면 결국 이원론적 구도를 낳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능력은 제한된 영역에 국한 되지 않는다. 욥은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42:2)라는 말로써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과 주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간의 일이나, 사탄과 인간, 모든 만사를 유기적인 체계 속에서 뜻대로 섭리하시는 절대주권의 소유자이시다.

  둘째, 칼빈은 인간의 선악간의 행동원인은 하나님의 주권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충동을 받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 의지가 그쪽으로 기울어지든, 혹은 반대로, 우리에게 해가 될 일을 우리의 지성과 마음이 삼가든, 그때마다 언제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거기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마다 언제라도 그의 섭리로 역사하셔서 심지어 외부적인 일에서 조차 사람들의 의지를 이리저리 기울게 하시며, 그들이 자유로이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다스림을 받는다.”라는 강한 어조로 주창하고 있다.

  칼빈의 주장을 요약하면, 선악간의 어떤 일이 인간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정이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악행에 대해서는 사탄과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지만, 선행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되어있음을 주창한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칼빈의 견해에 동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섭리의 범주를 윤리적 판단으로 왜곡하게 된다. 하나님께는 선악이 일반이며(롬8:28, 잠16:4, 수23:15), 악행의 선봉장인 사탄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종속된 상태에서 악한 일에 사용되는 도구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는 선행(善行)에만 치우쳐선 안되고,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주관하신다는 일원론적 체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칼빈의 말대로 선행은 하나님의 범주로, 악행은 사탄과 인간의 범주로 취급한다면 하나님과 사탄, 인간이 마치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물론 칼빈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칫 이원론으로 치우칠 경향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한 신학적인 작업에 충실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소재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체계를 근본적으로 증거 하기보다는 현상적인 방법론에 치우쳐 설명함으로써 사탄과 인간의 역할을 구분한 점은 충분하지 않다.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다. 즉, 하나님은 상대적인 존재와 의논이나 타협 또는 방해나 도전에 반응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시며 일방적이시고, 자율적이시다. 이것이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전형이다. 신본주의는 모든 섭리의 기초가 하나님의 작정계획에 근거하여 주관하심에 근거를 두고 있고, 섭리의 동력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있음을 뜻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 (대구동산교회)

제2권 제5장 자유의지론에 대한 반론
제2권 제3장 타락한 인간의 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