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4-07-20 12:2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3권

제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중생과 회개


회개의 성립

두 번째, 칼빈은 회개의 성립을 죽임(mortification)과 소생(vivification)으로 아래와 같이 분류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지각을 얻게 되면(죄와 심판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고 완전히 무너지며, 낮아지고, 던져진 상태에서 떨게 된다. 그리고 실망과 절망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것이 회개의 첫 번째 부분으로서 보통 “통회”(contrition)라고 부른다. (중략)“살리는 일”을 불안과 두려움이 진정된 이후에 얻게 되는 마음의 행복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살리는 일”이란 오히려 거룩하고 헌신된 삶을 살고자 하는 열심을 의미하며, 거듭남에서 생겨나는 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죽어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시작한다는 말처럼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말은 죄에 대한 통회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소원을 통해서 회개가 성립된다는 뜻이다. 즉, 회개는 죄와 관련이 있으며, 죄에 대한 애통의 결과이며, 용서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 대한 헌신적인 결단을 단행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의 성립은, 율법에 의한 정죄와 사죄의 은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회개는 죄에 대한 고통과 통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영원한 속죄의 은총이 함께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죄를 통한 속죄의 은총으로 귀결된다. 구약의 역사서와 선지서에서의 징계와 파멸은 섭리의 목적이 아니라 회복과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선행조건임에 주목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역도 결국은 우리의 죄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것에 있다. 우리들의 죄를 대속해 주신 이유는 죄에 대한 애통만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는데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회개는 단순히 죄에 대한 애통의 차원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며, 그 은혜의 영광을 깨닫게 되는 만큼 주를 위해 살고자 결단하기에 이르는 것까지를 함의한다. 복음적인 회개의 개념은 죄와 용서의 좁은 범주를 탈피해서 죄와 의(義)의 종합적인 차원에서 정리되어져야 할 것이다. 성도의 신앙고백적인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과 의에 대한 지식이 먼저 정립되어져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때 마다 죄를 미워하고 더 높은 칭의의 은총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방편이다.

회심과 회개의 정의

세 번째, 칼빈은 회심과 회개의 정의에 대해서 “하나님께로의 회심 전체를 회개라는 용어로 이해하며 또한 믿음이 회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라고 규정한다. 그는 회심과 회개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회개의 개념 속에 회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 밝히면서 회개의 정의를,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서 우리의 생활이 주께로 돌아서는 것이며, 옛 사람과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것으로 세분화하여 정리하고 있다.

회개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로 참되게 돌아서는 것(true turning of our lifeto God)-이는 하나님께 대한 순전하고 진지한 두려움에서 생겨난다 - 으로서, 우리의 육체와 옛 사람을 죽이는 일과 영을 살리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로, 회개를 가리켜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킴”이라 부른다면, 반드시 거기에 외적인 행위의 변화만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살필 것은 회개가 하나님을 향한 진지한 두려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여 일깨움을 받아야만 비로소 죄인의 마음이 회개할 이향이 생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남은 것은 회개가 두 부분-곧, 육체를 죽이는 일과 영을 살리는 일-으로 되어 있다는 우리의 진술을 설명하는 일이다.

칼빈의 이론을 정리하면, 먼저, 회개의 정의에 있어서 회심과 회개의 개념을 회개로 통합해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회개의 생활을 강조하기 위해서, 회심과 회개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일평생 통회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의 의미에 대해서는 첫째, 성도의 삶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시작하며, 셋째, 육체는 죽이고 영을 살리는 데 있다고 한다. 위의 내용에서 칼빈은, 회개가 두려움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점은 복음적인 내용과 맞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기독교 윤리의 행동 동기가 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에서 시작된다는 데 있다. 성경에 보면 탕자의 비유(눅 15:11∼32)가 있다. 이 비유의 본질은 탕자가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돌아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탕자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사랑해 주실 것을 알고 돌아오는 것에 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바울의 말(롬 5:20)처럼 죄를 미워하되 죄책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가 아니라 그 죄를 용서함 받은 것에 대한 은혜의 감격이 우선하는 것이다. 물론 칼빈도 “의에 대한 사랑에 먼저 붙잡히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죄를 미워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회개의 논증에서는 한쪽으로 치우쳐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 (대구동산교회)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3권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