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6-04-24 19:2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기독교강요 이해


제4부 (20장) 성도의 기도

주기도문 해설

칼빈은 주기도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우리를 위하여 한 가지 기도의 형식을 제시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든 것과 우리가 구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순서대로 세워 놓으신 것”이라고 밝힌다. 그의 말대로 주기도문은 기도의 표본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指標)일 뿐만 아니라 영적예배의 정수(精髓)이다. 주기도문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인간의 종교적 행위를 위한 방편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만을 기억하고 찬양하게 하려는 계시적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기도문에 대한 칼빈의 해설과 함께 필자의 신학적 견해를 피력고자 한다.

기도의 대상

첫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이는 곧 하나님께 어느 지역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며 만물을 통틀어 편만하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이 너무 아둔하여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달리는 생각할 수가 없으므로 “하늘”이라는 말로써 그 영광을 표현하였다. 하늘보다 더 숭고하고 위엄 있는 것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또한 이 “하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온갖 부패나 변화의 가능성을 초월하여 계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 전체를 친히 포용하고 계시며 그의 권능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곧 하나님께서 무한히 위대하시고 높으시며, 불가해한 본질에 속하시며, 권능이 한없으시며, 영원히 불멸하신 분이시라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냥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아버지들 중에서도 가장 선하시고 가장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 (중략) 주님은 우리들 각자가 개별적으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를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한 가지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계신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가운데에서 형제간의 사랑의 느낌이 얼마나 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경계를 받게 된다.

칼빈은 ‘하늘’에 대한 의미를, 공간을 초월한 편만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한 계시적 개념과 부패와 변화를 초월한 도덕적 개념 그리고 우주 전체를 지배하시는 권세이며, 영원불멸을 총합하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 필자는 그의 개념에 공감하면서 부연적인 내용을 첨가하고자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기도의 대상을 명시하고 있다. 피조세계와 생명의 근원이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 삼아 주신 유기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것으로서, 특히 내가 아닌 “우리”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뜻하는 것으로서 아들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한 뜻을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그의 자녀라는 관계가 구축된 상태에서 신과 인간의 일치된 뜻의 소통이다.

신(神)의 이름의 중요성

둘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칼빈의 해설은 아래와 같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감사치 않는 태도와 우리의 악의로 말미암아 흐려져 있고, 우리의 뻔뻔스러움과 정신 나간 불경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할 수 있는 만큼 훼손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중략) 하나님께서 스스로 합당하신 존귀를 받으시기를,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할 때에 최고의 경의를 품기를 우리가 간절히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간구는 다음과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곧 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혀온 모든 불경이 제거되며 없어지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일을 혼란케 하거나 흐리게 만드는 모든 비방과 조롱이 사라지게 되며, 모든 참람한 것들이 잠재워지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거듭거듭 그의 위엄 가운데서 환히 빛나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칼빈의 주장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된다는 기도를 해야 되는 이유는,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악의로 훼손되어 있기 때문이고, 소극적으로는 하나님 스스로 존귀를 받으시기를 인간이 간절히 소원해야 하며, 인간의 불경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기를 바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기도의 대상이신 신(神)의 이름은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을 통해서 계시된 고유명사로서 본질을 드러내시는 유일한 개념이며 실제이다. 특히 ‘여호와’는 하나님에게만 지칭되는 고유명사로서 창조와 관련되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지막 종말에 이르기까지 성경전체의 논리체계를 총합하는 하나의 원리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박용기 목사는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하나님의 고유명사는「여호와」라는 칭호이다. 이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 어원은 분명치 않으나, 일반적으로「하얗」이라는 말에서 왔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는“존재하다(exist)”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여호와」라는 하나님의 고유명사의 문자적인 뜻을“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am)”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여호와」의 존재 방식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신학적으로 의미로 설명한다면, 내용은 전연 달라지게 된다. 그 이름의 신학적 의미는“언약을 세우시고 이루시는 자”라는 것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가 보냈다고 하라신다. 이를 열조와 관련된 “여호와”로 설명하시면서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는 말씀으로 구체화 시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서 자세히 설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조와의 언약대로 애굽에서 생육번성하게 하시어 큰 민족을 이루어 주셨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해 주셨으며, 다윗을 통해서 통일왕국을 이루게 해 주셨고, 분열왕국 이후에도 다윗과의 언약대로 남 유다는 왕조가 계승되게 하심으로서 여호와이심을 확고히 해 주셨다.
예수께서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된다는 기도를 가르치신 이유는 여호와께서는 ‘이름’을 통해서 당신의 존재를 확증시켜 주셨으며, 그와 함께 전능하시고, 신실하시고, 주권자이시며, 영원하시고, 자비하신 속성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을 근거로 해야 하며, 그 언약을 세우시고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기도와 여호와의 이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도는 다른 종교와 같이 인간이 필요한 것을 무조건적으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전제된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간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되는 것은 너무도 타당한 이치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위해서 영광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사실을 범사에 인정하고 기억하여 간구해야 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승일 목사 (대구동산교회)

여호와의 영원성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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