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1-03-05 13: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십계명이란 무엇인가?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종교는 그 나름의 특성 있는 인륜적인 도덕적 계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종교가 인륜적인 도덕의 옷을 입고 대중 속에 파고 들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 역시 십계명이라는 계시적인 종교적 계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 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약의 십계명을 기독교의 인륜적인 도덕법의 요약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십계명 가운데 일부는 유교의 도덕률과 하등 다름이 없는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십계명에 대한 오해는 기독교를 일반적인 이방종교와 같은 하나의 인륜적인 도덕종교로 그 위상을 전락시키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인간의 공로주의 사상을 고취시켜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왜곡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성경적인 기독교를 체계적으로 파괴시키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십계명을 인륜적인 도덕법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중세기 스콜라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공로주의 신앙을 정당화 하기 위한 목적에 그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중세기의 이러한 잘못된 신학 작업에 의하여 기독교는 인간이 자기 공덕을 쌓아 가도록 교화하는 도덕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러한 중세 신학자들의 잘못된 견해를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빈이 크게 비판하지 아니하고 별다른 수정없이 그대로 받아서 개혁교회에 전수하여 준 것이다. 따라서 후대 개혁파 신학자들 역시 맹목적으로 그것을 전수받아 오늘에까지 가르치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계명과 도덕은 근본적으로 그 의미가 다르다. 계명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명하신 것이라면, 도덕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질서를 위하여 정한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과 공자의 도덕은 그 원리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계명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종교적인 계율이라고 한다면, 도덕은 인간과 인간과의 윤리적인 계율인 것이다. 이렇게 계명과 도덕이 그 의미나 원리에 있어서 근본적인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게명을 도덕법으로 취급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구약의 십계명이 기독교의 인륜적인 도덕적 계율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십게명 발령의 동기와 그 내용의 해설, 발령의 목적을 알아보고 마지막에 그 복음적 의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명하신 동기를 살피는 것은 십게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절대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은 십계명 발령의 동기가 그 이해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출발을 모르면 그 과정이나 결말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십계명을 발령하신 목적이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그 동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발령 동기는 적어도 이스라엘 자손의 조상인 아브라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언급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하란에서 부르셔서 그에게 자손이 번창할 것과 가나안 땅을 주실 것 또 큰 민족을 이루어 다스리게 하여 주실 것을 삼대언약으로 세워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년동안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실 것을 예소하여 주셨다. 그후 야곱시대에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이 흉년에 의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들은 그곳에서 사백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여호와의 언약대로 그 자손의 생육이 중다하여 장성만 육십만여명으로 번창하였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그로 하여금 그 자손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도록 하신 것이다. 그것은 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예고하여 주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애굽에 많은 재앙을 내려 종살이를 하고 있는 그 자손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홍해를 능력으로 건너게 하여 시내산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언약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을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시기 전에 그들에게 시내산 언약을 세우시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시내산언약을 세우시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경외하게 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명하시기 전에 먼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다”(출 20:2)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신 내용이 이를 잘 말하여 준다. 이러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역사섭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발령하여 주시게 된 동기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명하신 십계명의 내용은 출애굽기 20장 1∼17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스스로를 먼저 소개하시고 이어서 열가지 계명을 명하여 주신다. 이러한 십계명의 내용을 성경 본문에 따라 차례로 해설함으로써 십계명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하여 보기로 한다.

첫째,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고 명하심(3)

이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을 애굽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인도하여 내신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른 신’이라는 말은 하나님 외에 모든 ‘이방신’을 말한다. 즉 하나님 외에는 그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 없으므로 다른 이방신을 그들에게 있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 당시의 백성에게는 이 첫째 계명을 지키며 행하기가 너무도 쉬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백성은 여호와께서 직접 애굽에서 자기들을 인도하여 내시는 것을 보고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설령, 누가 그들에게 다른 이방신을 그들 앞에 있게 하라고 강요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다른 이방신을 그들 앞에 있게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첫째 계명을 그들에게 명하신 것이다.

둘째, 새긴 우상이나 아무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심(4∼6)

첫째와 둘째 계명은 내용의 의미상으로 잘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참으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 곧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질투하신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삼 사대까지’라는 말은 ‘잠시동안’을 뜻하는 말이고, ‘천대까지’라는 말은 ‘영원토록’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8)라는 말씀과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시 30:5)라는 말씀이 이를 잘 말해 준다. 다시말하면 삼 사대까지 죄를 갚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들로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게 하시려고 잠시 민족적인 사랑의 징계를 하신다는 것이고,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은 계명을 지켜 여호와를 잊지 않고 경외하는 자는 영원토록 사랑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언약자손을 절대로 아주 멸하시지 아니하신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열조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며, 나아가서는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의 이름과 그 신실성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용기 원로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세례란 무엇인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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