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11-12 01:0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광야의 안식처 에셀나무 이야기


광야에 자라는 나무 가운데 로뎀나무와 에셀나무 처럼 좋은 대조를 이루는 나무가 있을까?
로뎀나무는 그늘이 별로없는 빗자루 모양으로 자라지만, 에셀나무는 좋은 그들과 함께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참된 안식처를 상징하는 나무로 유대인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은 때는 갈대아 우르에서 소명의 땅인 가나안에 정착한지 많은 세월이 지난 시점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 사라와 함께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얻은 이스마엘로 인한 기쁨도 맛보았고, 드디어 사라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약속의 자녀인 이삭도 얻게 됐다. 결국 약속의 자녀를 위해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쫓은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의 터줏대감인 아비멜렉과 우물 문제로 인한 갈등을 순조롭게 타결짓고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런 아브라함이 네게브 사막의 중앙에 위치한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었다. 그는 왜 굳이 에셀나무를 심고 그 밑에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까?

로뎀나무와 달리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에셀나무는 단순히 그늘만을 제공하는 나무가 아니다. 에셀나무는 광야에 물이 없는 없는 환경에서도 생존하는데, 이는 뿌리를 깊이 내리고 깊은 곳에서 물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에셀나무는 잎이 짜고 그 짠 잎의 성분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서 새벽녘에 에셀나무 잎에 맺힌 이슬은 너무도 아름답다. 에셀나무 잎에 반짝반짝 수없이 머금은 이슬 방울들과 그 밑에서 쉬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은 유대인들에게,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참된 안식을 표현하는 상징이 된 것이다. 새벽녘에 듬뿍 내린 에셀나무의 이슬은 해가 뜨면서 서서히 증발하게 된다. 그래서 한낮의 뜨거운 광야에서도 이슬의 증발열로 인해 에셀나무 밑의 그늘은 주변보다 최소 10도 정도 시원한 온도를 유지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광야를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위해 참된 안식처인 에셀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에셀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나그네들에게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전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름받아 정착했던 가나안은 온갖 다신론과 우상들로 인해 ‘너도 신, 나도 신, 너도 밤나무, 나도 밤나무’를 외쳤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생활의 경험에서 특별히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가능 가운데 잉태하게 된 사라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많은 간증들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는 온갖 잡신이 판을 치던 다신론의 가나안 문화에서 진정한 신은 영생하시는 엘로힘 하나님뿐임을 에셀나무 밑에서 증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광야에서 오갈데 없는 비참한 상황을 대표하는 로뎀나무와 참된 안식처를 의미하는 에셀나무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나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로뎀나무에 대한 이미지가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기독교 상담소나 수련원의 이름이 ‘로뎀의 집’으로 된 것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참된 안식처를 의미한다고 하는 개념에서는 차라리 ‘에셀의 집’으로 짓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기브아의 에셀나무 밑에 앉은 사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다스리던 시대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여호와를 왕으로 섬기며 열두 지파가 동맹을 유지하며 성립되던 지파체계의 이스라엘은 강력한 적수인 블레셋의 등장으로 인해 이방의 제도인 논란 많은 왕정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됐지만 지파 조직은 그대로 있었고 중앙집권을 의미하는 행정기구나 관료제도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중앙집권적 왕권이 성립된 것은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 왕 때에서야 가능했다. 사울은 후궁도 없고 친척인 아브넬을 제외하면 지휘관도 없었으며 호화스런 왕궁은 꿈에도 꿀 수 없었다. 이처럼 사울시대의 왕권은 그야말로 무늬만 왕인 허울좋은 옷에 불과 했던 것이다.

사울은 자기의 고향인 기브아에서 다스렸는데 기브아의 에셀나무 아래 앉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사울이 기브아의 에셀나무 아래 앉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브아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도시이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헤브론 등이 있는 유다 산지 보다 북쪽에 있는 도시이다. 에셀나무는 브엘세바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최남단의 광야와 사막에 자라는 나무로서, 북쪽 베냐민 지파의 산지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이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심은 것이다.

당시 왕궁도 없던 사울 왕 시대에, 사울은 자신의 고향인 기브아에 에셀나무를 심어 그 밑에서 통치를 했다. 사울 왕과 몇 안되는 지휘본부가 위치한 에셀나무는 멀리서도 보였을터이고, 쉽게 눈에 띄었을 것이다. 기브아와 같은 산지에서는 자연상태에서 자라지 않는 특별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표현은 사울 이전의 사사시대에 활동했던 드보라의 통치에 대한 기록에도 나타난다(삿 4:5). 드보라는 라마와 벧엘 사이의 종려나무 아래에서 다스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에게 나아와 재판을 받았다. 종려나무 역시 광야와 사막의 샘 곁에 자라는 나무이다. 라마와 벧엘은 기브아 보다 더 북쪽에 있는 에브라임 산지이다. 종려나무도 이런 산지에서는 자연상태로 존재할 수 없는 나무이다. 이것도 역시 의도적으로 심은 것인데, 드보라의 지휘본부를 나타내는 장소로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종려나무를 보고 사방에서 백성들이 쉽게 드보라의 지휘본부를 찾아와 재판을 받도록 배려한 것이다.

만나에 숨은 비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 16:31)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출 16:14).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동안 광야를 지나면서 굶어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만나 때문이다. 만나는 하늘에서 비 같이 내려온 양식이 아니라, 새벽녘 이슬과 함께 내려서 이슬이 마르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형과 식물을 잘 아는 성경학자들은 만나의 정체를 밝히면서 에셀나무와 관련된 재미있는 학설을 제시했다. 이는 이슬과 함께 내리는 만나에 초점을 맞추어, 광야에서 수많은 이슬 방울이 맺히는 에셀나무와 연결시키는 것이다. 에셀나무의 잎을 먹고 사는 곤충이 있는데, 이 곤충이 해가 뜨자 마자 바로 건조되는 액체 형태의 탄수화물을 분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꿀 섞은 과자’라고 하는 만나가 아닐까 추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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