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0-12-04 13:4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가난과 궁핍의 상징,쥐엄열매 이야기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인 ‘돌아온 탕자’이야기는 불신자들에게까지 잘 알려진 너무나 유명한 스토리이다. 멀쩡히 살아 있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서 먼 나라로 떠난 둘째 아들은 결국 모든 재산을 날리고, 입에 풀 칠 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돼지를 치는 일을 해야 했다.

이를 볼 때 그가 떠난 먼 나라는 유대인 마을이 분명 아닐 것이다. 유대인 마을에서는 돼지를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에 요단 동편의 베뢰아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린 유대인 지역이었지만, 그 북쪽인 데가볼리 지역은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둘째 아들이 떠난 먼 나라는 아마도 데가볼리에 속한 10개의 이방인 도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돼지의 사료로 가장 값싼, 그러나 영양소가 풍부한 쥐엄열매를 먹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땅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떨어지자 둘째 아들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놓고 돼지와 쟁탈전을 벌여야 했다.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이런 상황 설정은 유대인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돼지와 쥐엄열매가 오버랩되면서 둘째 아들이 처한 극도의 빈궁 상태를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아들은 쥐엄열매도 먹지 못할 정도의 궁핍에 이르렀는데, 이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춘궁기 보릿고개 때 남들이 캐먹는 풀뿌리도 먹지 못하고 배를 곯았다’는 말이 된다.

어찌 더 떨어질 나락이 있으랴! 게다가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동물인 돼지와 쥐엄열매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다니…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에 보면 쥐엄열매에 대한 유대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재미난 표현이 있다. ‘어떤 유대인이 오직 쥐엄열매를 먹을 정도로 궁핍과 고난을 겪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다’ 유대인이나 한국 사람이나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절대로 회개하지 않는 것이 모든 사람의 죄악된 본성이 아닌가 싶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사 1:19∼20).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며 거절하는 자에게 임할 식량을 대비하여 말씀하고 있다. 순종하는 자는 가나안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수 있지만, 거절하며 배반하는 자는 ‘칼에 삼키운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말하는 ‘칼에 삼키운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부엌칼을 꿀꺽 삼킨다’는 말일까?

쥐엄열매는 히브리어로 ‘하루브’라고 하는데 본문에 나오는 ‘칼’은 히브리어로 ‘헤레브’라고 한다. 원래 모음이 없는 언어인 히브리어를 가지고 유대인들은 자음만을 이용해 워드플레이(언어의 유희)를 즐겼다. ‘쥐엄열매’와 ‘칼’은 자음이 같기 때문에 서로 대체할 수 있는 워드플레이가 된다.

본문의 표현도 이런 유대인들의 언어 표현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불순종하는 자들이 ‘칼에 삼키운다’는 말은 ‘쥐엄열매를 먹게 된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쥐엄열매는 가난과 궁핍에 처한 자들이 먹는 최후의 식량이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날 때부터 나실인이었다. 같은 나실인으로서 풍요로운 서쪽 해안평야에서 활동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삼손과 달리, 세례요한은 열악한 광야가 기다리는 동쪽의 유다 광야에서 활동했다. 세레요한의 식량으로 언급된 메뚜기와 석청은 분명 오늘날 우리들의 사고로 이해하면 안될 것이다.

세례요한이 유대광야에서 활동하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하면, 과연 하루 세끼를 해결하기 위해 메뚜기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세례요한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메뚜기를 잡아먹은 것일까? 이스라엘 생활 9년이 접어드는 나로서는 유다 광야를 수없이 지나다녀보았지만 메뚜기를 한 마리도 본 적 없다. 왜냐하면 광야의 환경은 메뚜기가 생존할만한 충분한 풀이 없기 대문이다.

유대인들에게 쥐엄열매는 메뚜기 열매로 통한다. 세례요한이 먹었다고 하는 메뚜기는 유대인들에게 쥐엄열매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지만, 이러한 문화를 모르는 한국 성도들에게는 실제 메뚜기를 먹은 것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쥐엄열매는 생긴 모양이 메뚜기와 비슷해서 그냥 ‘메뚜기’로 불리기도 했다.

세례요한이 탄생한 예루살렘 서쪽의 엔케렘 지역은 쥐엄열매가 많이 나는 곳이다. 특별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 산지는 쥐엄열매가 많이 나는 지역인데, 요한은 말린 쥐엄열매를 동쪽의 유다 광야로 가지고 가서 몇달씩 또는 몇년씩 사역할 수 있었다.

실제로 2세기 초 로마의 현상범이었던 랍비 시므온 바르요하이는 유다광야에서 쥐엄열매로 연명하며 몇년간 로마의 수색을 피할 수 있었다. 탕자가 쥐엄열매를 먹은 것과 세례요한이 쥐엄열매를 먹은 것은 약간의 의미 변화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말해서, 탕자에게 쥐엄열매는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지만, 세례요한에게 쥐엄열매는 ‘검소와 청빈’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유다 광야의 한적한 곳에서 곧 임할 하나님 나라와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그런데 요한이 있는 광야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세례를 받고자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 중에는 세리와 로마 군병까지 포함된 실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총망라했다.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광야에서 사역한 세례요한에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하면서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가리켜 오실 메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까? 이는 쥐엄열매를 먹은 요한의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의 청빈한 삶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는 예루살렘에 거하며 성전 제사장으로 섬기며 ‘좋은 옷’ 입고 다니는 종교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영적 카리스마를 발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세례요한처럼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광야에서 외치는 사역자들이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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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영광의 상징, 백향목 이야기
광야의 안식처 에셀나무 이야기